일생동안 선비로 살다가신 선각자

 

 

조봉주(咸安 趙鳳周,1986-1968)

 

 

정난아(晉陽 鄭蘭牙,1885-1973)

 

 

 

 

 

 

 

 

 

 

 

 

 

 

일생동안 선비로 살다가신 선각자

증조부 조봉주(趙鳳周,1986-1968)가 태어난 1886년은 갑신정변(甲申政變) 후 구미 자본주의 국가에 직접적인 문호개방이 이루어졌고, 한성(漢城)에서는 조불(朝佛)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던 해이다.

조봉주(趙鳳周)는 고려초 대장군인 조정(趙鼎)의 28대손이며, 이씨조선 초 생육신(生六臣)인 조여(趙旅) 어계 선생(漁溪 先生)으로부터는 17대손이다.  5명의 남자 형제중 둘째였는데 어릴 때부터 영특하여 가장 많은 서당(書堂) 수업을 받았고, 그 만큼 학식도 풍부하여 돌아가실 때까지 무명의 선비이자 지역 유지로서의 품위를 지키셨다.

정난아(晉陽 鄭蘭牙, 1885-1973)는 남해읍 심천리가 친정으로 부친 정종기(鄭鐘基, 晉陽鄭氏)와 모친 박국화(朴菊花) 사이에서 태어났고, 19세에 결혼하여 1남 6녀를 두었다. 후덕한 성품으로 자손들이 가장 좋아했고, 마을에서도 많은 존경을 받았다. 독자로 태어난 조태원(趙兌元)은 괴질로 서른살의 젊은 나이에 요절했고, 출가한 딸들 중에는 2005년 현재 3명이 살아계신다.

2대에 걸친 독자집안으로 친손자인 조혁래(趙爀萊)는 가문을 이어간 유일한 혈통으로 중학교부터 서울에 유학 시켰다. 훗날 증손자들이 객지에서 유학하는데도 적극적인 후원자이기도 했다. 특히 증손자들에게는 국민학교 입학 전에 한글보다도 천자문(千字文)과 서예(書藝)를 먼저 가르쳐 주기도 했고, 공부하는 손자들을 가장 사랑하셨다.

증손자들에게는 한편의 역사서이자 드라마

증조부 조봉주(趙鳳周)는 각종 명절, 나들이, 귀한 손님을 맞을 때는 항상 매미 날개처럼 화사하고 날렵한 갓근과 흰 두루마기의 정장을 하셨는데, 사진은 60세 환갑 나이의 모습으로 이미 백발이셨다.

이러한 모습은 정론(政論)을 논하다 행여 회유나 불의(不義)의 말을 들으면 바람소리나게 소맷자락 뿌리치며 단호히 떨쳐 일어나던 꼿꼿한 선비의 표상이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 같지 않은 말은 듣지 않겠노라는 대쪽같은 성품을 지닌 증조부 같은 선조들 덕택에 수많은 난국을 헤치고 오천년 동안이나 나라를 이루어왔는지도 모른다.

1985년 을미사변과 국모 민비(閔妃)가 일본인에 의해 살해되고 단발령이 내려지자 기다렸다는 듯 갓을 벗어던지고 상투를 자르며 친일행각에 앞장섰던 사람들은 애초부터 갓을 쓸 자격이 없는 자들이었다고 했다. 그런 식으로 시류(時流)에 휩쓸려 대의(大義)를 거스른 사람들이 오히려 나라일을 놓고 비분강개하는 모습은 차라리 희극적이었다라고....

그리고 이 증손자의 뇌리에는 언제나 책(漢書)을 무릎 앞에 두고 읽고 계셨던 모습으로 다가온다. 일제시대에는 주민들에게 글을 깨우치도록 스스로 마을 공회당에 서당을 마련하였고, 마을 주민들은 경조사가 있을 때면 항상 증조부를 찾아와서 상의하곤 했다.

동학 농민혁명은 1894년에 시작된 사건이었는데 어린 나이에도 봉수대에서 불을 피우고 어른들과 모여다녔던 기억을 되살리주기도 했다. 근세조선이 몰락하고, 일제 강점기를 거쳐 대한민국의 발전과정까지 살다가신 증조부와 증조모는 대대로 자손들에게는 한편의 역사서이자 역사 드라마로 각인되고 있다. [2005-12-18 조현찬]


 

 

증조부모 趙鳳周-鄭蘭牙之墓

 

 

조부모 趙兌元-金鳳儀之墓

 

함안조씨 시조

함안(咸安)은 경상남도 남부 중앙에 위치하는 지명으로 삼한시대의 변한 땅이었으며, 또 가락국의 6가야 중 아나가야의  영역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함안군으로 불리게 되었으며, 고려 때의  995년에 함주, 1018년에 함안군, 1172년에 함안현, 1374년에  함안군, 조선 때의 1505년에  함안도호부, 1506년에 함안군이 되었다.
 
함안조씨(咸安趙氏)의 시조는 고려 초에 대장군을 지낸
조정(趙鼎)이다. 정(鼎)은 중국 후당 12년(丁巳: 897년)생으로 신라 경애왕 3년(丙戌: 서기926년)에 두동생 부(釜)당(當)을 데리고 절강 사람인 장길과 함께 고려에 귀화하여, 왕건을 도와 고창성에서 견훤을 대파하고 고려통일에 공을 세웠으므로 개국벽상공신으로 대장군에 올랐다. 그리하고 후손들은 함안에 정착 세거하며 본관을 함안으로 삼아 세계(世系)를  이어왔다.

시조 정(鼎) 원윤공(元尹公) 이하(以下) 구세(九世)까지는 세대가 멀어 고증할 수 없으나 10세손(世孫) 안경(安卿)(고죽재(孤竹齋)) 11세손(世孫) 승숙(承肅)(덕곡선생(德谷先生))도 훌륭했고 생육신(生六臣)인 12세손(世孫) 조려(趙旅)(어계선생(漁溪先生)를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그의 아들 3형제와 손자 12명을 두어 분파의 근원이 되어 17세(世)에서 24파(派)로 분파되어 전국각지에 산거하고 있다. 함안군내에 살고 있는 함안조씨(咸安趙氏)는 주로 어계선생(漁溪先生) 직손파(直孫派)인 참판공파(參判公派)로 군내 각리(各里)에 산거하고 있다.

가문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정(鼎)의 아들 간(幹)이 고려에서 중랑장(中郞將)을 지냈으며, 증손  시우(時雨)는 오위 도영장, 영준(英俊)은 형부상서를 지냈다. 생육신(生六臣)의 한 사람인 여(旅)는 공조전서를 지낸 열(悅)의 손자로 일찍부터 명망이 높아 장래가 촉망되었으나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하자 벼슬을 단념하고 고향 백이산에 들어가 독서와 낚시질로 여생을 보냈으며 정조때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명종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연(淵)은 여(旅)의  손자로 전서, 예서, 잡체(雜體)에 뛰어나 당대의 명필로 일컬어졌으며 시문에도 능했다. 영조때 화가로 이름난 영석은 군수 해(楷)의 아들로 숙종때 천거로 등용되어 첨지중추부사를  거쳐 돈령부 도정을 지냈고, 시(時)·글씨·그림에 뛰어나 삼절(三絶)로 불리웠다.
 
그 밖에 한성부 우윤을 역임한 해(楷)의 아들
영복(榮福)과  학자로 이름난 춘경(春慶)이 유명했으며, 영복의 아들 중회(重晦)는 서장관(書狀官)으로 청나라에 다녀와 승지가 되어 사도세자가 뒤주에 갇혀 죽을 때  극간하다고 봉조하(奉朝賀)가 되었으며, 성품이  강직하여 그에게 아부하는 많은 사람들을 모두 배척하며 지조를 지켰다. 조선 후기의 화가로 유명한 정규(廷奎)는 특히 산수(山水), 인물(人物)등을 잘 그렸으며, 희룡(熙龍)은 오위장(五衛將)을 역임하고 시문과 글씨·그림 등에 능하여 훌륭한 함안 조씨 가문을 빛냈다. 1985년 경제기획원 인구조사 결과에 의하면 함안 조씨((咸安趙氏)는  남한에 총 56,433가구, 231,728명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집성촌

     전북 임실군 덕치면 회문리

전북 남원군 산동면 태평리

전남 고흥군 봉래면 봉영리

     전남 완도군 금일면 화목리

경남 김해군 이북면 안곡리

경남 밀양군 부북면 용지리

     경북 군위군 우보면 나호동

경남 남해군 남해읍 입현리

경북 의성군 옥산면 실업리

 

咸安趙氏 行列

항열(行列)은 본관(本貫)을 같이하는 혈족(일가) 사이에 대수(代數) 관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 마련된 표시이다.  문중(門中)에서 항열을 짓는 법칙을 미리 정해두고, 자손이 태어나면서 이름을 지을 때 반드시 항열자를 붙이도록 한다. 항열자는 이름의 위 또는 아래에 붙이는데 이것도 미리 정해둔 위치에 붙이게 된다. 항열에 따라 이름을 지으면 후손이 많은 가문에서는 같은 이름이 많이 나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항열자를 넣지 않은 이름을 사용할 경우 일가인지 타성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또한 세대(世代)도 구분할 수 없어 거리감을 느끼며 오래 전에는 법도가 없는 집안에서 태어난 사람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작명가(作名家)를 찾아가면 항열자를 붙이지 않고 이름 짓는 경우가 많다. 이는 엄밀히 말해 문중율법(門中律法)을 어기는 행위이며 문중질서를 문란케 하는 일일뿐만 아니라 자신의 발전과 양달(榮達)을 위해 지극히 이롭지 못한 일이라는 주장도 있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성인이 되어 자신의 항열자를 몰라서 곤란 당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함안조씨 항열자는 오행상생(五行相生)으로 水, 木, 火, 土, 金 자가 붙은 글자를 선택하여 번갈아 가면서 사용한다. 함안조씨는 현재 25대 식(植) 자로부터 36대 환(煥) 자가 함께 생존하고 있다는 함안조씨 종친회의 설명이다.

함안조씨 항열자(咸安趙氏 行列字)

  25代 : ○植,    26代 : 性○,       27代 : ○奎(孝),  28代 : 鏞○,      29代 : ○濟(河),  30代 : ○來(相),

  31代 : 顯○     32代 : 在(周)○, 33代 : ○欽,        34代 : ○洙,      35代 : 東○,       36代 : ○煥 ,

  37代 : ○培 ,   38代 : 鍾○,       39代 : 漢○,        40代 : ○根,      41代 :               42代 : ○均,

  43代 : 鎬○ ,   44代 : ○    ,      45代 :                46代 : ○炫 ,     47代 : 基○,      48代 : ○錫 ,  

  49代 : 泳○,    50代 : ○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