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白鶴)처럼 살다가신 김봉의 할머님

 

 

 

 

일생동안 백학처럼 살다가신 할머님...

필자의 나이 다섯 살쯤이던가. 할머님 친정 집의 어느 분 결혼식이 있던 날, 그 날 따라 무던히도 추웠다. 할머님께서는 겨울철이면 항상 목에 두르고 다녔던 흰 목도리로 나의 머리를 감싸고, 손을 꼭붙잡아 주던 희미한 기억부터 시작된다.

할머님은 유난히도 목이 길었고, 곱디고운 살결에 흰 옷을 무던히도 좋아했다. 뇌졸중으로 쓰러지시던 그 날에도 곱게 빗은 족두리 머리에 흰옷을 입으셨고, 하얀 버선발에 흰고무신을 신으셨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김봉의(金鳳儀, 1908.10.20-1983,6.26. 慶州金氏) 할머님은 일제합병 전 조선조말 남해군 삼동면 물건리에서 김성조(金成祚)와 김항조(金項祚)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스무살의 나이에 조부인 조태원(趙兌元)에게 시집와서 서른살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1983년 무신년 6월 26일 75세의 나이로 돌아가실 때까지 독신으로 지냈다.

한 때는 친청 오빠들이 젊은 조모님을 재가시키 보려고 했지만 이 사실을 알아챈 증조부는 수년 동안 친정으로의 발길을 끊어놓기도 했다. 길삼과 밭일, 농작물로 푼돈 모으는 일들을 도맡아 하셨고, 어린 손자들의 용돈은 오로지 할머님로부터 나왔다.

1983년 돌아가시기 전 거동과 언어장애의 불편함에도 증손녀에게 용돈을 챙겨주시던 그 인자함과 후덕에 손자인 우리들은 눈시울을 적시기도 했다.

자손으로는 1남 2녀를 두셨는데 자(子)는 혁래(爀來)이고, 여(女)는 영래(永來)와 명래(命來)인데 각각 최부성(崔扶成, 경찰 공무역)과 최기홍(崔基洪, 부산 동아중학교장 역임)에게로 출가하였다.   

친정조카들은 아직도 고모님을 못잊어

할머님께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냈던 친정 물건리에는 가까운 친척들이 모두 도회지로 떠나고, 가옥은 완전히 개조되어 장조카인 김용명(金龍明, 서울 거주)이 관리하고 있다. 특히 친정 조카들은 여느 고모들과 달리 할머님만을 무척이나 좋아하여 자주 찾아오곤 했다.

 

 

 

 

손자들을 그토록 자랑스러워 하시고....

왼쪽은 언젠가 마을 할머니들끼리 금산(錦山)에 놀러가서 찍은 사진. 동네 할머니들은 가을추수가 끝날 무렵이면 남해섬의 명승지인 금산, 용문사, 화방사 등지로 단풍놀이를 떠났다. 그리고 봄철이면 모심기를 시작하기 전 "새미못등"(남해군 이동면 초음리 초곡마을 위쪽에 위치한 저수지)에서 벚꽃놀이를 가졌다.

국민학교 입학하기 전 할머님은 항상 우리 손자들을 자랑스럽게 데리고 다녔는데, 독신이었던 할머님은 유달리 춤추는 재주가 없었다는 기억이다. 혼자 계실 때에는 가사나 음정이 불분명하고 어슬픈 노래를 중얼거리곤 했는데, 엄한 시부모 밑에서 독신으로 살아온 한탄조(?)의 구슬픈 가락이었는지도 모르겠다.

[2003.10.16]

 

삼동면 지족에서 승용차로 10분쯤 내려가면 왼쪽 해안가 마을이 할머니의 친정인 물건리. 고기떼를 부른다는 방조어부림을 만난다. 해안 1.5㎞를 뒤덮은 만여 그루의 천연기념물 방풍림이 반달을 그리며 장관을 이룬다.

해안은 깨끗한 몽돌해변으로 여름철 해수욕을 즐기고, 몽돌을 씻는 파도 소리, 메미 소리를 자장가 삼아 숲속에 누워 한숨 낮잠을 즐기는 맛이 기막히다. 이 숲은 물건항의 해안 1.5km에 1만여주의 수림이 반달형으로 그려 대장관을 이루고 있다. 임관의 높이는 10∼15m이며, 수령은 약 350년이 넘는다. 주요 수종은 주로 낙엽수로서 상목을 이루고 있고, 후박나무 등의 상록수도 있다.

고기들이 짙은 숲그늘을 보고 많이 모여들기 때문에 어자원 유치림으로 유명하다. 전설에 따르면 전주이씨 무림군(茂林君)의 후손들이 이곳에 정착하여 방풍림을 조성했다고 하며, 19세기 말경에 이 숲의 일부를 벌채한 다음, 폭풍을 만나 피해를 입은 후 오늘날까지 이 숲을 헤치면 마을이 망한다는 전설을 믿고 한그루의 나무도 함부로 베는 일이 없이 보호하고 있다. 1980년대부터 남해지역 관광의 명소가 되고 있으며, 천연기념물 150호이다.

이동면 초음리 초곡마을에 있는 장평저수지. 봄철이면 왕벚꽃이 만발하여 장관을 이룬다. 어린 시절 "새미못등"이라고 불리웠던 기억인데, 유채꽃이며 벚꽃나무들 모습은 50년전과 크게 달라져 보이지 않는다.

봄날이면 장평저수지에는 만개한 벚꽃과 튜울림, 유채꽃으로 남해로 봄 나들이 온 관광객들의 발목을 붙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