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님 김권순 (金權順)

 

 

 

김권순 어머님은...

조혁래 아버님과 결혼한 김권순(慶州 金權順, 1932- ) 어머님은 세상 물정도 모르는 15세의 나이에 어르신들이 시키는대로 시집을 왔다.

어머님은 외조부모인 김석윤(金錫允)과 박봉지(朴奉只) 사이의 2남 4녀 중 막내로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 588번지에서 태어났다. 아버님께서 살아계셨을 때 들려준 이야기로는 어머님은 배운 집안의 막내 딸로서 학생시절 매우 영특하고 학교공부도 항상 일등이었다. 아버님과 같은 나이였지만 2년이 늦은 9살에 국민학교를 입학했는데, 그것도 외조부에게 끈질기게 졸라서 겨우 허락을 받았다고 했다.

사진은 국민학교에 입학하기 전 큰 언니와 함께 읍내 사진관에서 찍었다는 사진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중 가장 오래 된 것이라고 했다. 같은 마을 남해군 고현면 이어리로 시집간 이모님이 안고 있는 애기는 장남인 박이남이시다.  

 

"23回 動春을 맞이하면서... 1954年 1月2日 舊正"이라는 글귀가 사진 뒤에 적혀있다. 1954년 구정 연휴 이튿날 촬영한 가족사진으로 짐작된다.

글귀에서 보듯이 당시 부모님은 모두 22세(1932년생)였는데, 16세라는 어린 나이에 결혼하였다. 당시 현진 형(사진좌측)은 5살이었고, 동생인 본인(사진우측)은 3살이었다.


자식들에게 보낸 어머님의 메일

보기에도 아까운 사랑하는 내 아들 딸, 사위, 그리고 귀여운 손자 손녀들을 날마다 생각하고 그리워함은 천륜으로 맺어준 하나님의 고귀한 선물이라 느껴져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내 가슴을 울리네. 돌이켜 생각해보면 금년은 집집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있었지만, 햇빛 나면 감사하고, 비바람치고 불면 참고견디는데 그칠분일세.

정해년도 하루를 남겨두고  허전함을 느끼네. 너희 아버지 돌아 가신지 벌써 6년째를 맞아 생각하면 성경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내가 경험하고 후회되는 것은 꽃은 잠깐 피었다 시들어지는 것. 젊은 좋은 시절은 잠깐이며, 노년은 지루하고 길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가족끼리 부부끼리 좋은 추억 남기도록 하고, 너무 일에만 몰두하지 말고 건강에 힘쓰고, 운동에 취미갖기 바라네.

일년에 한 두번 만나는 아들 딸들, 2007년 새해에는 이 어머니의 소망은 무엇보다 집집마다 건강하면 좋겠고 집집마다 평안과 행운이 깃들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옵나이다.[2006.12.30]


KBS TV(진주)의 2007년 1월 24일 저녁뉴스와 25일 아침뉴스에 나온 장면이다.  

 

<멘트>
KBS 진주방송국은 농촌지역의 초고령화 시대를 맞아 새로운 대안 모색과 문제점 등을 짚어보는 시리즈를 마련했습니다. 오늘은 첫 번째로 6,70대 노인들이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삶을 찾아가는 현장을 진정은 기자가 다녀왔습니다.

(진정은 기자) 저는 남해군 문화원에 나와 있는데요, 이 문화원에서 여성분 중 가장 나이가 많으신 김권순 할머니를 모셨습니다. 이메일을 하고 계신 노익장이 놀랍습니다. 얼마나 되셨나요?

(김권순) 한 6 - 7년쯤됩니다.

 

(기자)    어떤 계기로 시작하게 되었나요?

(김권순) 자식들과 떨어져 의사소통의 도구로 시작하게되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사회추세를 볼 때 편지는 너무 무겁고 전화는 너무 가벼워 보이지 않습니까? 이메일이야 말로 최고의 소통 수단이라 생각합니다.

 

(기자)    그래도 처음 시작이 쉽지 않았을텐데요?

(김권순) 물론 어려웠죠. 그렇지만 객지에 나가있는 자식들이 응원해주고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터라 쉽게 포기할 수 없었답니다.

 

(기자)   자식들과의 의사소통 필요성이 할머니의 컴퓨터 실력으로 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상으로 인터뷰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