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림의대

한림의료원

 

    

 

 

의료수준의 발전은 임상검사 업무의 다양화와 함께 더욱 높은 수준의 검사지식과 기술을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진단검사의학과는 새로운 검사개발과 함께 신뢰도와 정확성이 우수한 검사결과를 제공함으로써 진료수준을 높여야 하는 막중한 의무를 부여받게 된다. 한림의대 진단검사의학교실은 한강성심병원이 개원한지 35년이 지난 시점에 12명의 스탭진이 근무하면서 12명의 동문을 배출하여 질적양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07년은 한림대가 개교한지 25주년이 되는 해인데, 이 시점에 맞추어 한림의대 진단검사의학교실의 발자취를 3기로 나누어 회고해 보고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고자 한다.

한림대 설립자이신 윤덕선 명예이사장(작고)은 1971년에 종합병원이 불모지였던 영등포 지역에 중앙대 부속병원 한강성심병원을 신축하고 성심유지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당시 병리학자이신 안부호 박사(작고)께서 임상병리과의 책임자로 부임하여 1979년까지 검사실을 발전 시켜왔다. 그러나 오늘날 현시점에서 회고해 보면 검사시설 및 장비는 보잘 것 없어 약 30평 규모의 검사공간에서 대부분의 검사를 수기법으로 처리하던 때였다. 중앙대와 관계가 청산되고 1977년에는 동산성심병원이 개원되었으나 진료규모를 감안하여 1984년까지 소규모 검사실로 역할밖에 할 수 없었다. 1980년초에는 재단산하 병원으로 세 번째 강남성심병원이 개원되어 의과대학 설립의 기틀이 마련되었다.

1) 한림대학 개교 및 춘천, 강동성심병원의 개원에 따른 성장기 (1982-1990)

한림의대 임상병리학교실의 역사는 한림대가 개교한 1982년부터 실질적인 기록을 가진다. 1982년 이전에는 성심중앙유지재단 산하병원으로 한강성심병원과 1980년 개원한 강남성심병원이 있었는데 한강에는 이성호 과장(작고), 강남에는 박성회 과장(현재 서울의대 교수)이 주로 조직병리 업무를 담당하면서 임상병리검사 업무를 지도감독하고 있었다. 

1982년 3월1일 이규만 전문의가 부임하여 임상병리 검사업무를 전담하게 되었는데 이 시점이 한림대 개교와 함께 임상병리학교실의 태생기라 할 수 있겠다. 이에 앞서 이계숙 전문의가 한강성심병원 2년간 근무하다가 1980년 강남성심병원 과장으로 부임하였으며, 1984년에는 강정옥 전문의와 조현찬 전문의가 각각 동산성심병원과 한강성심병원에서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았다.

특히 한강성심병원에는 2명의 임상병리 전문의가 근무하게 되면서 비로소 임상병리 전공의 수련기관으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는데, 1985년 박정현 전공의가 입국하면서 처음으로 전공의 수련을 시작하였다. 또한 1985년부터 매년 대한임상병리학회의 월례집담회를 주관하였고, 1997년에는 두차례에 걸쳐 대한임상병리학회 학술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교실역량을 과시한 바 있다.  

그러나 스탭진의 발령이 지연되거나 검사행정 업무의 체제 혼란기가 지속됨에 따라 임상병리학교실의 초대 주임교수는 김교명 교수(내과)가 형식상 임명되었고, 1984년 9월에는 박영의 교수가 미국에서 영입되면서 춘천성심병원의 임상병리과장 겸 제 2대 주임교수로 발령을 받았다. 또한 춘천성심병원 임상병리과는 1985년 박찬정 교수가 근무를 시작하면서 임상병리검사 체계를 수립하였다.

1986년초에는 이규만 교수가 일본 오사카대학 미생물병연구소에서 연수생활을 거쳐 국내 임상병리검사실로는 처음으로 임상검체를 이용한 바이러스 배양을 시작하였다. 뒤이어 캐나다 Calgary 대학에서 6개월 연수를 마친 후 바이러스학의 최신 진단기법을 도입하였는데, 이는 바이러스 질환에 대한 국내 임상의들의 많은 관심을 모았다. 1986년 10월에는 강동성심병원이 서울 동부지역에서 최대 대학병원으로 개원하면서 조현찬 조교수가 임상병리검사실 책임을 맡아 전보발령을 받았고, 1989년에는 미국 Minnesota 대학과 Hahneman 대학에서 혈액종양의 세포유전학에 관한 기술습득을 위해 장기연수를 다녀왔다.

2) 임상병리학교실의 분리독립과 함께 이어온 발전기  (1990-1998)

국내에서는 임상병리학과 해부병리학이 분리독립하는 추세에 따라 한림의대에서도 1990년 임상병리학과 (해부)병리학교실로 분리하였는데, 이규만 교수가 교실분리후 5명의 스탭진과 3명의 전공의로 구성된 임상병리학교실의 초대 주임교수의 발령을 받았다. 또한 이규만 교수는 대외적인 활동으로 임상검사 관련 학술용어를 정비하여 임상병리용어집(고려의학 발행)을 편찬하였고, 임상병리학회 고시이사와 대한병원감염학회 총무와 회장로서 학회발전에도 지대한 공헌을 하였다.

1990년 9월 미국에서 오랫동안 연구활동을 수행한 이경화 박사가 부임하여 강동성심병원에 HLA 검사실을 개설하여 한국골수은행의 모태가 되었으며, 골수이식 검사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켜 한림대학의 위상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경화 교수는 2001년 한림대성심병원에 유전체응용연구소를 개설하면서 소장으로 임명되어 자리를 옮겼다. 춘천성심병원의 박찬정 교수는 1992년 미국에서 림프종의 분자생물학적 검사 및 중성구 기능검사를 습득하고 귀국한 후 서울아산병원으로 전직할 때까지 강동성심병원에서 유세포분석검사, 진단혈액학 분야의 특수검사를 신설하는데 초석을 마련하였다. 

강동성심병원의 조현찬 교수는 1990년대 초부터 미국에서 습득한 혈액종양 세포유전학을 국내에 보급하는데 많은 업적을 쌓았고, 또한 1997년 대한임상검사정도관리협회의 유전진단분과위원회를 창립하여 국내 세포유전학검사와 분자유전학검사의 질적수준을 높이기 위한 봉사활동을 8년간 지속해 왔다. 1992년에 입국하여 춘천성심병원으로 발령을 받은 강성하 교수는 1995년부터 1년간 일본 오사카 혈액센터에서 혈액형 유전자검사 기법을 습득하여 한국인의 혈액 유전자형을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전문학술지에 발표하였다. 강희정 교수는 1년 7개월간 미국 Colorado 대학에서 임상면역학 분야에서 보체의 병인론적 역할에 대한 최신연구를 수행하여 국내 자가면역질환의 병인 규명에 많은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된다.

1995년 송원근 교수는 동산성심병원으로 발령받아 입국했는데 1997년부터는 강남성심병원의 진단검사의학과의 검사업무를  책임지고 있다. 2003년부터 2004년까지 1년간 미국 Creighton 의대에 장기연수를 다녀오기도 했다. 대외적으로는 임상병리학회의 임상미생물분과 간사로서 본교실의 위상을 높인 바 있고, 임상미생물학회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중이다. 1996년에 입국한 신동훈 교수는 임상화학 부문의 교육과 새로운 검사방법을 개발하여 춘천성심병원 임상병리검사실 질적 수준을 높이는데 많은 기여를 하였으며, 대한임상병리학회 임상화학분과의 간사 직책으로 맡은 바 소임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1996년에는 박지영 교수(강동), 1997년에는 이영경 교수(동산)가 연구강사로 임용되어 입국하였는데, 2003년에는 각각 미국시애틀 워싱턴대학, 남가주 스크립스연구소에서 진단혈액학과 관련하여 장기연수를 가졌으며, 임상병리 제반 검사업무의 질적 향상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본 교실이나 임상병리학계 차원에서도 가장 안타까웠던 사실은 강남성심병원 임상병리과장으로 근무했던 김현태 교수의 사망소식이었다. 1994년 중앙대 임상교수직을 사직하고 한림대로 부임한 김현태 조교수는 임상화학 특수검사 도입에 열정적으로 활동했는데 미국  Case Western Reserve 대학 연수생활 도중에 얻은 지병의 악화로 한림대 5년간의 생활과 학문적 꿈을 접고 2000년 3월 세상을 떠났다. 1990년대 중반 몇몇 전문의들이 임상병리학교실 스탭진으로 합류한 바 있으나 기간을 달리하면서 일신상 이유로 사직하였다.

1995년에는 대한임상병리학회의 춘계 및 추계 학회를 한림의대 임상병리학교실에서 주관하면서 학회발전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고 자부하고 있다. 추계 학회는 10월27일과 28일 양일간에 걸쳐서 서울 스위스그랜드호텔에서 개최하였는데 모든 의국원들이 단합된 역량을 가늠하는 좋은 기회였다.

3) 한림대성심병원 개원과 진단검사의학교실 도약기 (1998- )

1998년에는 동산성심병원을 폐원하면서 평촌 신도시에 한림대성심병원을 개원하여 한림대의료원은 또 다른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되었다. 한림대성심병원 개원준비팀을 이끌어왔고, 임상병리검사실의 시설 및 장비도입를 담당했던 조현찬 교수가 과장으로 겸직발령을 받았으나 2001년에는 강희정 부교수(과장)가 전보발령되어 이영경 조교수와 같이 또다른 검사실 발전을 약속하게 되었다. 현재는 1993년 9월에 부임한 김한성 조교수가 합류하여 3명의 스탭진이 진단검사의학과를 꾸려가고 있다.

한강성심병원과 강남성심병원에서는 수적으로 부족한 임상교원의 진료업무를 보완하기 위해 2001년에 입국한 허미나 임상강사와 1999년에 입국한 박민정 연구전강이 근무하고 있는데 학술연구 활동과 학생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2002년에는 강동성심병원에 김재석 전임강사가 입국하여 미생물검사와 분자진단 부분에 큰 기여를 하였다. 2005년에는 제주의대로 자리를 옮긴 강성하 교수 자리에 이경아 조교수가 부임하였으나, 2007년 2월말로 사직하고 연세대 영동세브란스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상병리검사 장비의 비약적인 발전추세에 따라 의료원 산하병원의 검사장비도 끊임없이 개선시켜 왔다. 역사적인 측면에서 강동에서는  Hitachi 736-20 자동화학분석기, Quantamatic 효소면역분석기, Corning 전기영동장치 등 당시로는 최신기기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도입하였고, 그 동안 병원 진료활동을 선도하는 임상검사실을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화학검사의 응급화, 새로운 검사방법의 개발, 컴퓨터 기술의 도입에 힘입어 면역혈청과 미생물 분야의 검사자동화 등 발빠른 행보를 계속해 왔다. 특히 1993년말에는 염색체자동분석기인 Cytoscan을 도입하여 국내에서는 최초로 염색체검사의 자동화를 실현하였다. 또한 유세포분석기(FACScan)는 세포표지검사뿐만 아니라, 타병원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중성구 기능검사를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확립하였다. 이러한 외형적인 발전에 힘입어 검사업무도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는 약 500종의 검사항목에서 연간 병원당 300-380만건의 임상검사가 시행되고 있으며, 내적인 검사수준도 꾸준히 향상되어 매년 약 5-10가지의 새로운 검사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다.

1995년부터 강동성심병원을 시작으로 전체 진료분야에서 완전전산화가 이루어짐으로 인해 임상병리 업무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처방전달시스템(OCS)의 구축과 함께 임상병리 검사도 결과지 없이 병실에서 실시간 별로 조회할 수 있는 보고체계를 구축했으며, 진단검사의학과 전직원은 보다 정확하고 신속한 임상병리검사를 위해 끊임없는 변신을 추구하고 있다. 또한 병원 종합의료정보망을 통하여 전직원은 인터넷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전자메일을 통한 검사 정보교환이 생활화되었다. 1996년부터 각병원 임상병리과는 독자적인 인터넷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제한적이나마 많은 의료인들에게 검사정보를 제공한다는 자부심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병원특성화 계획에 따라 진단검사의학과의 역할과 위상이 어느 부서보다도 높아졌고, 이에 부응하여 임상병리검사의 질적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전직원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2007년 한림대의 개교 25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진단검사의학교실에는 12명의 전임교원 2명의 전공의가 근무하고 있으며, 전문검사기술을 보유한 140여명의 임상병리사가 산하병원에서 검사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 동안 진단검사의학교실에서는 약 600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하였고, 각종 학회와 학술단체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첫 입학생부터 진단검사의학(임상병리학)을 독립하여 교육시켜 왔는데 최근에는 교과목 개편에 따라서 대부분의 내용은 임상과목의 각 부문에서 다루어지도록 하였다. 학생 실습교육은 5개 병원에서 조별단위로 진행되는데 다른 임상과목보다 훨씬 체계적인 교육이라는 평판을 듣고있다. 또한 전공의 수련교육 프로그램은 1985년 처음으로 전공의가 입국하면서 시작되었는데 그 동안 조영숙(1989), 이은희(1990), 정지영(1997), 박순영(1997), 박민정(1998), 고근아(1998), 김한성(1999), 전현배(2003), 김영철(2005) 등 10명의 전문의를 배출하였고, 2007년 현재 김용균(R3), 박동건(R1) 2명의 전공의가 수련중이다. 특히 세포유전학에 대한 수련 프로그램은 외부 대학병원에도 개방하여 14명의 외부 전공의를 단기연수 시킨 바 있다.

앞으로 임상병리검사실은 검사자동화와 함께 분자유전검사의 인식도가 높아지고 분자생물학적 기법이 보편화될 것이다. 이러한 추세에 따라 한림의대 진단검사의학교실도 신속하게 변신하면서 임상의학을 선도하고, 학술연구 및 교육의 도장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2007년 3월 새로 개편된 주임교수와 과장급과 기사장급 실무책임자이 함께 각오를 다지고 있다. 현재 주임교수는 강희정 (한림), 각 병원의 과장으로는 허미나(한강), 송원근(강남), 신동훈(춘천), 박지영(강동), 이영경(한림) 교수이다.

 2007년 3월 1일

 

한림의대 진단검사의학교실

[정리]   교수 조현찬

 

한림대의료원 진단검사의학교실의 발자취

한림의대 진단검사의학교실 역사는 한림대학이 개교한 후1982년부터 시작하지만 진단검사의학과로서의 역사는 한강성심병원이 개원하던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한강성심병원이 개원하던 시점에는 안부호 교수(1971-1979, 경성의전 졸업)가 초대 과장으로 부임하였고, 1981년에 이계숙 선생님(강남), 1982년에는 이규만 선생님(한강), 1984년에는 강정옥 선생님(동산)과 조현찬 선생님(한강), 1985년 박찬정 선생님(춘천)이 신규 임용되어 스탭진으로 합류하였다.  

한림대학의 개교 당시 김교명 교수(한강 내과학)가 한시적으로 임상병리학교실 주임교수를 대행한 적이 있으나 1984년 9월 박영의 교수가 부임하여 주임교수로 취임하였다. 병리학교실이 임상병리학교실로부터 독립되는 1990년 이전까지는 해부병리학을 전공하신 이승훈(1974-1984, 가톨릭의대졸, 작고), 강상균(1972-1973, 부산의대졸), 이성호(1978-1984, 가톨릭의대졸, 작고), 전병구(1986-1994, 서울의대졸), 박성회(1980-1982, 서울의대졸), 김철우(1983-1984, 서울의대졸), 이계숙(1983-1994, 고려의대졸), 강신광(1984-1989, 서울의대졸), 김한겸(1987-1988, 고려의대졸), 서연림(1988-1989, 고려의대졸), 구혜수(1988-1990, 이화의대졸), 이민철(1989-1995, 고려의대졸), 강   구(1989-1997, 한양의대졸), 신형식(1984-현재, 서울의대졸) 교수가 교실원으로 재직한 바 있다.

1985년 박정현 전공의가 처음으로 입국하였으나, 1986년에 입국한 조영숙 전공의가 임상병리학교실로는 처음으로 배출된 전문의이다. 1990년 3월은 병리학교실이 분리독립하고, 임상병리학교실이 명실상부 교실로서의 구실을 하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는 시점이며 이규만 교수가 주임교수로 발령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