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前) 강동성심병원장 배수동 박사와 윤덕선 박사

 

배수동 박사를 처음 뵙게된 것은 1986년 강동성심병원이 개원하기 한달전쯤 한강성심병원에서 새로 부임하는 배수동 박사를 윤대원 이사장께서 모시고 다니면서 병원시설을 구경 시켜주고, 교직원들을 소개하던 때인 것으로 기억된다. 20년이란 세월이 흐른 지금, 당시의 중후한 인상이 현재까지도 변하지 않고 여전히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이시다.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된 배수동 박사는 미국, 밀본, 동남아, 유럽의 독일과 노르웨이 등 6개국에서 연구활동과 의사생활을 거치셨던 분으로 국내 의료계 인사중 가장 국제화된 인물이란 점을 알게되었다.

배수동 박사는 6.25 전쟁이 발발하던 당시 경북의대를 졸업하시고(1951), 공군군의관(52-55)을 거쳐 미국 뉴저지 페터슨병원에서 인턴과정(55-56)을 거쳤다. 다시 독일 뮨헨대학병원 외과에서 2년간(56-58),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부속 Ullevaal 병원 외과(58-59)에서 근무하게 된다.

1959년 성신대학 의학부가 가톨릭 의과대학으로 개명하고, 외과학교실이 발족함에 따라 외과학교실의 초대 주임교수였던 윤덕선 교수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여 가톨릭의대 성모병원 생활을 시작했다. 이곳에서 6년간 전임강사와 조교수를 거친후 뜻한 바 일본 방사선의학연구소 및 千葉醫大 中山 外科에서 연구생활을 했고(62-63), 말레이시아로 건너가 말레이시아 국립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조교수와 부교수, 싱가폴 국립대학 외과 교수겸 싱가폴 종합병원 외과과장(82-86)까지 역임하셨다.

1986년 강동성심병원이 개원하면서 다시 윤덕선 이사장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여 강동성심병원에서 외과과장, 한림의대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그리고 강동성심병원 진료부원장을 거쳐 병원장으로 봉직하셨다. 배수동 박사께서 퇴임하신 지 10년, 진료문제로 병원에서 우연히 만나 윤덕선 박사와 관련된 기록물을 부탁했더니 4장의 사진을 보내 주셨다.

가톨릭의대 성모병원 시절의 2장 사진 중 위쪽은 가톨릭의대 전임강사로 재직할 당시 수술방에서 나와 쉬고 있던 모습이고, 두 번째 사진은 외과학교실 교수진의 회식자리였다고 했다. 초창기 가톨릭의대는 흉부외과나 성형외과는 외과학 교실에 소속되어 있었는데, 맨 왼쪽이 국내에서는 가장 먼저 신장이식술을 성공하셨던 이용각 교수이시고, 윤덕선 바로 오른쪽에는 초대 흉부외과학교실 주임교수였던 이홍균 박사이시다. 하단은 윤덕선 박사와 가톨릭의대 2대 외과 주임교수인 김희규 교수이시다.

배수동 박사께서는 "정년기념 논문집"에서 윤덕선 박사와의 인연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슨 인연인지 신설대학에서 많이 근무했기에 오랜 대학이나 병원의 전통을 이어가기보다는 전통을 창설하는데 참여를 하게 되었는데 우연히도 처음 교직을 맡았을 때 가톨릭의대 과장이신 윤덕선 교수님이었고, 마지막 직장에서도 이사장님으로 모시게 된 것을 일생의 행복으로 생각하며 지난 봄, 명예이사장님이 갑자기 돌아가셨을 적에는 존경하는 스승과 친애하는 형님을 동시에 잃어 버린 것 같아서 마음 속으로 얼마나 통곡을 하였는지 모릅니다." [2006-2-15 조현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