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카레라스 국제백혈병재단

    The José Carreras

    International Leukaemia Foundation

 

최근 국외 혈액학술지에서는 호세 카레라스 국제백혈병재단(The Jose Carreras International Leukemia Foundation)과 "E.D. Thomas Fellowship 2001" 지원에 관한 안내문이 자주 발견된다. 개인적으로는 안내문 내용보다는 백혈병재단 그 자체가 관심사이고, 또한 세계적인 테너가수 호세 카레라스에게도 특별히 흥미를 가지게된 것은 지난 6월22일 잠실운동장의 스페인 태생의 Jose Carreras와 Placido Domingo, 이태리 태생의 Luciano Pavarotti 세사람의 3Tenors 공연을 다녀온 다음부터였다.

카레라스는 가수로서 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1987년에 급성림프구성백혈병을 얻어 투병생활을 시작했는데 주위 전문가들의 조언으로 미국 Fred Hutchinson 암센터의 Edward D. Thomas 박사가 시술한 골수이식으로 완쾌하게 된다. 뒤이어 카레라스는 1988년 7월14일 그의 고향 바르셀로나에서 국제백혈병재단을 설립하고, Thomas 박사는 임상의로서는 처음 노벨의학상을 수상한다. 아래 사진은 백혈병재단 이사진이고, 오른쪽은 1992년 일본 교토에서 Thomas 박사 특강후 만찬석상에서 조우했던 사진이다.

호세 카레라스 국제백혈병재단, 성악가로서 카레라스의 공식 홈페이지, 그리고 3Tenors 멤버들의 공식 홈페이지를 방문할 수 있도록 정리하였다. 또한 그 동안 여러 특강에서 이용했던 카레라스 사진들과 글을 모아서 그의 음악세계와 국제백혈병재단 설립 배경에 대한 단편을 알 수 있도록 Jose Carreras' Biography 사이트도 만들어 보았다.

[2001년 10월2일  조현찬]

 

 

 

3tenor's Story

 

  "오페라와 축구는 어디서든 반드시 서로 만날 운명이었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라고 한 플라시도 도밍고의 말이 비유하듯이 '3테너가 첫 합동무대에 선 것은 1990년 7월, 이탈리아 월드컵 전야제에서였다. 로마의 황제 카라칼라가 지은 노천탕 자리에서 열린 이 공연의 타이틀은 'Carreras Domingo Pavarotti in Concert'.

   처음에 이 공연을 제의한 것은 호세 카레라스였다. 파바로티와 도밍고는 모두 카레라스의 백혈병 완쾌를 축하하는 뜻에서 동참하기로 했다. 이런 공감대가 없었더라면 3대 테너의 이벤트는 성사되지 않았을 것이다. 동시에 이들 세 명은 또 둘째가라면 서러운 독창곡을 불렀다. 마지막 곡은 파바로티가 부른 '공주는 잠 못 이루고'였다.이튿날 80만명이 이 공연 실황을 시청한 것으로 집계됐다. 그 다음 날에는 전세계 8억의 인국가 보았다고 정정됐다.이 숫자는 카네기홀 객석을 26만6천6백64회나 가득 채울 수 있는 인원이다.98년까지 1천1백만장의 CD, 1백만개 이상의 비디오가 팔려나갔다.

   '3테너' 앨범은 클래식 음반사상 처음으로 골드 레코드를 기록했고 LD는 플래티넘을 기록했다. 3테너는 93년 파바로티의 뉴욕 센트럴파크 공연 이후 헝가리 태생의 서커스 흥행사 티보 루다스를 만나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루다스는 90년 로마공연을 제작한 후 4년만인 94년 7월 16일 LA 공연을 제의했다. 이번에는 월드컵 축구경기의 결승전의 축구팬이다. 도밍고는 축구 시즌에는 스페인팀의 경기일정과 자신의 공연일을 겹치지 않게 짤 정도라고 한다. 3대 테너가 한 무대에 선다는 계획이 발표되자 발매 3분만에 6천석이 모두 매진됐다. 당시 가장 비싼 자리는 360달러. 언론 보도에 따르면 10만장은 충분히 팔릴 수 있는 공연이었다. 공연을 위해 항공노선도 이 곳을 우회하도록 했다.

   주빈 메타는 로마 오페라 피렌체 6월 음악제 오케스트라 단원 출신으로 2백명의 오케스트라를 구성했다. 보통의 악기 편성의 2배에 달하는 것이었다. 카레라스, 도밍고, 파바로티의 순으로 한명씩 등장하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다. 3명은 각 4곡씩 공식행사로 포함됐다. LA다저스 구장에서 열린 공연에는 5만6천여명이 운집했다. 그리고 세계120개국의 13억 시청자가 공연을 지켜보았다. 티켓 수입은 총 1,350만 달러. 티켓 가격은 15달러에서 1천 달러였다. LA공연의 대성공으로 이들 세명은 96년부터 월드컵과 관계없이 세계 순회공연의 대장정에 돌입한다. 지휘자는 주빈 메타에서 제임스 레바인으로 교체됐다.

   94년 LA다저스 구장, 98년 프랑스 월드컵 전야제에도 출연했다. 96년 6월 29일 도쿄 가수밍가오카 국립경기장을 시작으로 7월 6일 멜버른. 런던. 뉴욕. 뮌헨. 뒤셀도르프. 워싱턴. 라스베가스. 모데나. 빈. 서울. 베이징 등지를 순회공연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6월 잠실운동장에서 3테너 공연으로 5만명이 운집하였고, 초청비는 70억원 VIP석 관람료는 25만원이었다. 지금까지 국내에 초청한 사람으로 가장 많은 돈이 지불되었고, 따라서 지금까지 관람료도 이처럼 비싼 적이 없었다 한다. 그런데 곧이어 열린 중국 베이징에서의 관람료는 국내보다 훨씬 비쌌다고 하는데 위이어 들린 이야기는 홍콩 여행객을 비행기로 불러다가 대성황을 이루었다나.

                         [2001.10.2]


Luciano Pavarotti  : 돌아오라 소렌토로  ♣ O Sole mio  ♣ 공주는 잠 못이루고  ♣ Carus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