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醫師)와 의사(醫士)의 차이

   

 

'사'자로 끝나는 직업을 가진 신랑감이 인기가 좋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판검사, 변호사, 의사, 박사,... 등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높은 수준의 전문성일 것이다. 그러나 한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있다. 이 직업들을 한자(漢字)로 썼을 경우이다. 판사(判事), 검사(檢事), 변호사(辯護士), 의사(醫師), 박사(博士)...  '사'라는 글자가 한자(漢字)로는 각양각색이다. 몇가지 단어들을 좀더 첨가하여 다시 정리한다면,

    일    사(事) : 판사(判事), 검사(檢事), 도지사(道知事)

    선비 사(士) : 변호사(辯護士), 박사(博士), 간호사(看護士), 병리사(病理士), 속기사(速記士)

    스승 사(師) : 의사(醫師), 약사(藥師), 교사(敎師), 목사(牧師)

여기에서 '사'라는 글자의 각 계열에서 나름대로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먼저 사(事) 계열에는 '다스린다'라는 뜻으로 事가 쓰인 것이고, 士에서는 '전문직업인'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며, 사(師)에서는 우리에게 어떤 고귀한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종교적인 단어와 깊은 연관이 있다. 그리고 참고로 외교관인 대사는 한자로 "大使"이다. 사(使)에는 심부름꾼의 뜻이 내포되어있다. 그런데, 한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 의사(醫師)와 약사(藥師)도 '스승 사'의 계열에 속한고 있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그냥 생각한다면 전문직업인이니까 '선비 사(士)'의 계열에 들어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의사와 약사에 선비 사(士)를 쓰지 않고 스승 사(師)를 쓰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척이나 궁금하지만 그 어원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하여는 별다른 자료를 구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스승 사(師)'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어 먼저 소개하겠다. 일제 시대에 조선땅의 의료계는 독일의학의 영향을 받고 있던 일본의학에 의해 좌우되었던 때라서, 한(韓)의사는 '의생(醫生)'이라는 명칭으로 격하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고 한국전쟁이 터지는 와중에서 1.4후퇴로 정부가 부산으로 옮겨졌고 그 때 열린 국회에서 '국민의료법'이 만들어졌다.

국민의료법에 한의사와 관련된 조항이 들어있었는데 이것에 대하여 양의사들이 시비를 걸었다. '의생'을 '한의사'로 개명하는 것이야 상관이 없지만, 한의사들은 스승 사(師)가 아닌 선비 사(士)를 써야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한의사들의 반격과 '스승 사(師)'자에 대한 집착은 집요했다고 한다. 부산 주재 한의사들은 자금을 구하고 서울에서 내려간 한의사들은 정치적 로비를 맡아서 결국에는 어렵게, 어렵게 '스승 사(師)'를 따낼 수가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일화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사실과 교훈은 무엇일까? 조선왕조 500년에 걸쳐 유교의 문화가 이 땅을 지배했었다. 유교 사회에서는 '선비 사(士)'도 매우 좋은 뜻으로 쓰였을 것이다. 조선시대 엘리트들의 기반이 '선비'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위의 일화에서는 '스승 사(師)'를 더 높이 평가했음을 알려주고 있다. 그 단적인 예로서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들 수 있다. 즉, 스승과 부모를 같은 수준으로 본 것이다. 스승과 부모는 보살피고 가르침을 베푼다. 지금은 '선비 사(士)'도 유교적인 개념보다는 전문기능인이라는 뉘앙스로 그 의미가 많이 전이 되었지만, '간호원'을 '간호사'로 바꾼 예에서 보더라도 아직도 士에는 나름대로의 우대와 존중의 뜻이 남아있다.

의사(醫師)와 약사(藥師)의 경우를 따져보자. 士를 쓸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니고 師를 쓴다. 그렇다면 의사와 약사는 일반인들에게 어떤 고귀한 가르침을 주는 사람들인가? 사회의 통념상으로는 가르침이라기 보다는 우리 몸에 대한 의료행위를 제공해 주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과 건강을 다룬다는 것은 얼마나 고귀하고도 중요한 일인가! 단순히 의료행위 서비스라고 말해버리는 것은 의사나 약사가 아닌 일반인에게도 섭섭하게 들린다. 그래서 의료행위를 '인술(仁術)'이라고 높여 부르는 것이다.

師와 士에 관련해서 요새 논란이 되고 있는 의약분업과 같이 묶어서 생각을 해보자. 대다수 언론의 논조나 많은 사람들이 의사들의 파업을 집단 이기주의로 치부해버리는 것은 의사라는 단어에 師를 쓰는지 士를 쓰는지는 모르더라도 심정적으로는 士보다는 師에 더 가깝게 평소에 의사들을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의사님'이라 하지 않고 '의사선생님'이라고 부른다. 따라서 의사들의 속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의사의 師에서 비롯된 나름대로의 배신감과 허탈감이 상당할 것이다. 하지만 의료계의 모순과 의사들의 속사정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다면 의사만을 죽일놈이라고 몰아부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파업에 동참한 의사중에는 진심으로 환자를 위하고 이의 대승적 차원에서 현재의 의약분업을 반대하는 사람이 많다. 그리고 일단은 파업에 참여는 했지만 자원봉사의 형태로 환자들을 돌보는 의사도 있다. 이런 의사들에겐 그야말로 醫師라는 단어가 아깝지 않다. 그리고 또 의사라는 직업을 단순히 말 그대로 전문 직업으로만 보는 사람도 없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에겐 醫師라는 단어가 아깝고, 이런 사람들에겐 '의사(醫士)'를 사용하는 것이 보다 더 적절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의사들에게는 醫師가 되기를 강요하면서 실제로는 醫士의 대우만큼도 해주지 못한다는 데에 있는 것 같다. 의료계와 의사의 자세한 사정을 감안하지않고 정부는 개혁의지만 앞세우고 내실있는 조치에는 그냥 벌러덩 나자빠진채 허둥지둥 막무가내로 덤벼드는 것 같다. '국민의 정부'에 개혁성이 있다고 선전만을 하기위해서 시작하지는 않았겠지만 들리는 주위의 평들은 개혁보다는 현실 안주에 집착했다고들 하고 있다.

그리고 의사들의 파업을 '밥그릇 싸움' 이라고도 한다. 이 말에는 경멸과 조소의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밥그릇 싸움을 나쁘게만 볼 수 없다. 따지고 보면 밥그릇 싸움만큼 중요한 것도 별로 없다. 실제로 자기들의 밥그릇에 대하여 민감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내 자신이 나의 밥그릇에 초연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의사들의 '밥그릇 싸움'을 욕할 자격이 없다고 본다. 의사가 아닌 일반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래도, 그래도 이유가 어찌 되었든지, 많은 국민은 '의사 선생님'들이 醫士가 아니고 醫師였으면 하는... 단순하지만 순수한 바램을 갖고 있으리라...

                                                2001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