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이 파업한다고 지랄하는 이유

  
무엇인가 이상하다. 아니 수상하다. 수상하지 않은가? 언론은 정부도 문제가 있다고 하지만 의사폐업은 잘못이라고 거의 일방적으로 의사를 비난을 하고 있고 시민단체는 의사폐업 반대투쟁에 나서고 있으며 일반 국민들은 의사들이 지랄을 하고 있다고 까지 하고 있다. 그렇다. 의사들은 지랄을 하고 있다. 국민들의 표현대로 의사들이 지랄을 하고 있다면, 왜 의사들이 지랄을 하면서 파업을 강행하고 있는가? 이상하지 않는가? 의약분업 때문에 수입감소 때문이라고 하면 간단하다. 돈 많이 버는 의사들이 돈을 조금 덜 벌게 되자 지랄을 하고 있다고. 그러나 수입이 조금 감소하기 때문에 지랄까지 한다면 무엇인가 이상하지 않은가? 그렇다. 조금 감소하는 것이 아니고 엄청나게 감소하는 것이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지랄을 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상식 일 것이다. 또 이상한 것은 약사들은 침묵하고 있다. 이것도 이상하지 않은가? 의약분업의 당사자인 약사들은 왜 침묵하고 있는가? 그렇다. 이 상황에서 의사들이 지랄을 하고 있다면, 지랄한다고 아무리 비난해도 지랄이 멈출 것 같지는 않다. 그 지랄의 원인을 찾는 것이 의사들의 지랄을 고치는 길이 아니겠는가? 이 글은 의사들이 왜 지랄을 하고 있는지 그 원인을 찾아보자는 것이다.

이제껏 나온 의사들에 대한 비난을 정리해보자.
한마디로 의사들에 대한 비난을 정리하면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희생시키면서 의사들의 이익을 위해서 파업을 한다는 것이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공자님 말씀이다. 문제는 의사들이 공자님 말씀에 눈도 깜짝 않는 것이 아니겠는가? 의사들의 직업윤리를 말하면서 아무리 비난해도 의사들이 폐업을 그만 둘 것 같지는 않다. 왜? 이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이므로. 아무리 욕먹어도 돈을 벌면, 즉 개같이 벌어서 정승처럼 쓰면 되는 것이 자본주의 아니던가? 그러므로 공자님 말씀은 그만두자. 의사들이 의사들의 힘을 알아버린 지금, 의사들은 아무리 욕해도 폐업을 그만 둘 것 같지는 않다. 왜? 대안이 없다. 의사들도 믿는 데가 있으므로, 즉 대안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음으로 버티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의사들이 진료를 안 한다고 모두 다 집어넣을 수 있는가? 의사는 대체할 방법이 없다. 파업이 일어나면 대체 인력을 동원하면 되지만 군병원이나 보건소등의 대체 인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 현 파업의 실상이다. 왜냐하면 의사들이 일치 단결하여 파업에 돌입함으로 그 파급효과는 나라를 뒤흔들 정도이고, 의사들은 이제 단결하여 투쟁하면 나라를 뒤흔들 수도 있는 힘있는 집단임을 스스로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럼으로 국민들께는 죄송하지만, 의사들을 아무리 비난해도 의사들이 파업을 그만 둘 것 같지는 않다.

현정권에 대해 의사들은 비판적이다. 당연하게. 현정권은 기득권층에 비우호적이라고 의사들은 보고 있다. 의사들이 의사들의 힘을 알아 버린 것이다. 그 힘을 바탕으로 지난 정권과의 밀월관계를 끝내고 현정권에 대해 직접 싸움에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비난을 좀더 살펴보면, 환자의 생명과 건강이라는 문제에 대한 전제는, 의사들의 이익에 대한 침해보다 환자의 생명과 건강권이 더 심각하게 침해되었는가 하는 정당성 문제와 다수 국민을 위해서라면 의사들의 이익은 침해되어도 좋은가 하는 문제가 결부 되어있다. 법적인 문제, 사회적 문제 또한 만만치가 않다. 법적인 문제부터 지적한다면, 저번 1차 폐업에서는 지도명령이 내려졌다. 지도명령이란, 의업이란 공공성이 강한 산업이기 때문에 법으로 의사들의 단체 행동권을 제한하거나, 국가적인 일에 의사들을 동원할 수 있는 법적 강제이다. 즉 지도명령으로 파업이나 휴가를 제한하면 의사들은 타당한 이유가 없는 한 이를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 6월의 1차 폐업 때는 지도명령이 내려졌지만, 8월 달의 2차 폐업때는 아직 지도명령이 내려지지 않았기에 문제가 되지는 않고, 단지, 의사들이 담합하여 휴진을 한 것이므로 이는 법을 위반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런데 대한 민국이 법대로 하는 나라인가? 설령 법대로 한다고 해도 벌금이 얼마나 될 것이며, 법대로 한다면 모든 의사를 처벌해야 하므로 모든 의사를 처벌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법대로 갈 것 같지는 않다. 이건, 의사나, 국민이나, 정부나 다 알고 하는 것이므로 법은 지금 상태에서 의사들의 지랄을 멈추게 할 처방은 되지 못한다.

그 다음, 시민단체의 압력을 보자. 의사들은 시민단체를 아예 현정권의 홍위병으로 표현하면서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다. 한마디로 대화상대로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므로 시민단체도 의사들에게 별 압력이 될 것 같지가 않다.

그 다음 가장 중요한 것이 국민이다. 국민들은 일단은 불편한 것이 문제이다. 지금 의사 파업으로 불편하므로 의사들을 비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의약분업을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의 일반적 정서는 내가 불편한 것은 싫다는 것이 아닐까? 그럼으로 국민의 불편 때문에 의사파업을 비난하려면 의약분업도 같이 비난해야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의사들이 국민의 건강과 생명을 담보로 파업을 강행하는 문제를 살펴보자. 언론에서 시종일관 주장하는 것이 일단 파업을 끝내고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인데, 문제는 대한민국에서 실력행사 없이 이익집단의 문제제기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희귀하다는 점이고, 대화로 풀 수 없기에 실력행사에 나선 것이 아니겠는가? 그럼으로 대화 운운하는 것은 그저 해보는 원론적인 공염불일 것이다.

하나 더 말한다면,의사들의 파업을 비난하면서 말하는 것 중 하나가 의료시장 개방이다. 즉 의사들이 지랄을 하고 있으니 지랄 안할 외국의 의료자본에 우리나라 의료 시장을 개방하자는 것인데 이것은 의사들이 정말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미국이나 유럽의 자본이 왜 한국에 진출하지 않고 있는가? 이건 이상하지 않는가? 사실 이상할 것은 없다. 뻔하지 않는가? 한마디로 이익을 남길 수가 없기 때문에 진출하지 않는 것이다. 왜 이익을 못 남기는 지는 뻔하다. 합리적인 사고로 무장된 미국이나 유럽의사들의 눈에 볼 때 한국은 신기한 나라이다. 캐나다를 예로 들어보자. 캐나다의 의사들은 하루 볼수 있는 환자가 30명으로 정해져 있고, 그 이상 보면 치료비를 손해보고, 미국은 30명이상 보면 조사를 받게 된다. 한마디로 인간의 힘으로 적절한 진료는 30명이 한계라는 이야기이다. 대한 민국 의원의 손익 분기점이 내과, 소아과의 경우 70명에서 100명명 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사들의 수입은 미국이나 캐나다보다 적다. 인도주의가 아니라면 어떤 북미나 유럽의 의사가 이런 격무에 시달리면서 적은 수입을 감수하면서 한국에서 의사를 하려고 하겠는가? 수입문제 뿐만 아니라 의료사고가 나면, 법으로 처리하기보다는 시위와 협박이 앞서는 살벌한 의료환경에서 누가 진료를 하려고 하겠는가? 이건 의료사고가 나면 오진을 했다고 소문나면 그대로 망하게 되므로 돈으로 해결 해오고, 또 오진을 했더라도 끝까지 책임 없다고 우긴 의사들 책임도 크지만, 법에 호소하기 전에 시위로 협박해온 것이 사실 아닌가?

의사는 가난하면 안 되는가 하는 말도 있다. 이건 감정적인 말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이건 재벌도 가난하면 안 되는가? 하는 말과 같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가난해 질 수도 없고 한마디로 의사는 가난하면 안 된다. 의사들에 대한 비난은 기득권층에 대한 비난 일 것이다. 그 동안 대한민국의 기득권층의 재산 축적 과정이 정당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기득권층에 대한 비난은 정당하지만 그렇다고 의사들의 수입이 가난해 지도록 줄어도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문제이다. 단순하게 보면 일반인이 보기에 엄청난 돈을 버는 의사가 수입이 좀 줄어도 된다고 하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그렇게 간단하면 얼마나 좋겠는가? 이 문제는 의료의 독점권과 관계가 있다. 쉽게 말해, 의사만이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이 의료의 독점권이다. 그것도 법에 의해 허가 받은 진료 행위만 할수 있다. 의사가 한약을 쓰면 위법이고, 한의사가 양약을 쓰면 위법이다. 같은 의사인데도 이렇게 엄격하게 규정해 법적으로 독점권을 보장한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독점권을 보장해 주는 것이 사회적인 지출이 줄기 때문이다. 이해가 안간다면 쉽게 말해 엄청난 건강보조식품을 생각하면 된다. 대부분의 건강보조식품은 의학적으로 인정받은 것이 드물다. 의료의 독점권을 인정해준 이유가 인간의 생명을 다루므로 오랜 기간 배우고 철저히 훈련받아야 하므로 -라고 믿는 다면 참으로 순진한 사람이다. 실제는 의료의 독점권이 돌팔이를 막고, 사이비 의료행위를 막고, 국민 건강을 유지하는데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고, 통제가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진료, 의료를 의사가 독점하고 있는 한, 법적으로 보장받는 한, 의사들이 수입감소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뻔한 일이다. 이유는 두가지 이다. 하나는 투자에 비해 소득이 저하한다. 이미 의사가 되는 것이 투자에 비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게되었다. 물론 안정성이라는 면에서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의사들은 이 부분을 말하지는 않는다. 어찌되었는 개도 밥 먹을 때에는 건드리지 않는다고 하는 데 의사라고 풀먹고 사는 것이 아닌 이상, 밥그릇을 건드리면서 허준처럼 거룩하라고 하는 것은 조선일보가 정론지가 되기보다 어려울 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하는지 보자. 의사가 의료에 대해 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한, 가난하면 가난을 그대로 받아 들이겠는가? 지랄에 이어 발광을 할 것이다. 발광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이건 다시 말하기로 하고 의사도 가난해지라고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의사의 의료 독점권을 풀어놓고, 간호사, 약사, 접골사, 침구사 모두 의사와 같이 진료를 하게 하라는 것이 더 현실적이 아니겠는가? 선택을 국민들이 하게 하고. 그럼 의사를 늘리고 의사를 일단 가난하게 해보자 어떤 문제가 일어날것인가? 쉽게 말해 다음과 같은 문제를 예상 할 수 있지 않겠는가?


1. 의사질의 하락
2. 편법 진료
3. 양심적인 의사의 몰락
4. 실제적인 의료비의 증가

위와 같은 문제가 발생할 것이 뻔하다. 왜 뻔한지 살펴보자.
이미 의사가 되는 것에 대한 투자와 이익은 분기점에 와있다. 의대에 입학한 후 오직 다른 직업을 택하기 위해 입학 시험을 다시 준비하려는 의대생이 생기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의사가 되고 싶은 대입 준비생은 올해가 최고의 기회이다. 더 이상 의사라는 직업이 능력과 투자에 비해 소득이 더 많은 것이 아니고 손해가 된다는 뜻이다. 얼마나 우리사회가 자본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지 의사사회 내부를 살펴보자. 이것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대학병원급을 제외하고는 거의 소아과 레지던트를 뽑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수년간 의사들의 3D라고 하던 전국적으로 필요한 인원의 절반만 지원하던 일반외과 지원하는 인턴이 갑자기 늘고 있다. 쉽게 말해 의약분업의 여파가 적은 과로 몰린다는 말이다. 이 와중에 의약분업의 여파가 거의 없는 응급의학과도 갑자기 인기과로 부상했다. 지금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수는 4년차, 3년차, 2년차 모두 25명 안팍인데 1년차는 무려 75명이다. 이러한 자본의 논리에 따라 의사의 질의 하락은 뻔하지 않겠는가? 수입이 주는 의사들이 가난을 그대로 수용할 것인가?

이 문제를 따지기 전에 이제까지의 우리나라 의료제도, 즉 의료보험제도를 살펴보자.우리나라 의료제도는 자본주의 아니고 사회주의도 아닌 이상한 제도이다. 자본주의제도하에서는 건강은 개개인의 책임이다. 거칠게 말하면 아파도 돈 없으면 치료 받을 수 없는 것이 자본주의 체제이다. 70년 말 80년초에 의료보험이 도입되기 전에 우리나라는 소위 굴신제, 다른말로 관행 의료제도 였다. 즉 의사가 받고 싶은 대로 치료비를 받는 제도였다. 한마디로 돈 없으면 죽으라는 제도 였다. 이것이 북한의 선전, 서유럽, 북유럽의 복지국가와 비교하여 너무나 열악한 보건 제도이므로 자본주의의 논리대로 돈 없으면 치료받지 말라고 버티던 정부가 경제성장에 따른 국민을 달래고 국제사회의 압력에 못 이겨 도입한 제도인데, 이 것 또한 희한한 제도이다. 어중간한 제도가 된 것이다. 즉 보험은 보험인데, 보험이 아닌 보험이 된 것이다. 정부가 세금으로 국민 건강을 책임지는 사회주의를 도입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미국처럼 자본주의에 내 맡기지 못해 도입한 것이 강제 보험이다. 강제 보험은 다시 말해 세금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러므로 국민들이 항상 억울함과 손해 보는 듯이 느끼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문제는 느끼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손해보는 것이 문제다.

한번 살펴보자. 현행 의료보험하에서 환자의 부담이 50% 정도이다.딴지일보에서 인용한 것이다 "한 연구 논문에 의하면 1997년 우리 나라 환자들의 실제적인 본인 부담금은 외래 환자 67.4%, 입원 환자 40.3%로 나타나고 있다." 입원 환자가 외래환자보다 더 많은 진료비가 들 것은 뻔하다. 이것을 보험이라고 할 수 있는가?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가? 정부는 이번 발표에 원가의 80 %인 의료보험을 100%로 한다고 했다. 쉽게 말해 의료보험 환자를 볼 때 마다 20 %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이다.무슨 말인지 의아해 할수도 잇다. 그럼 어떻게 망하지 않고 병의원이 지탱했는가가 당연히 의문 사항이 아닌가? 한마디로 편법이다. 대한 민국의 의료체계가 얼마나 희한한지 알 수 있다.

교통사고 환자는 일반 보험환자의 약 2배 가까운 치료비를 받는다. 일반 보험 환자에게 손해 본 것을 교통사고 환자에게서 보충 하여 온 것이다. 희한하지 않는가? 같은 병에 치료비는 2배 차이라니. 그리고 위에서 말한 것 같이 환자의 부담이 50% 라는 데 그 비밀이 있다. 즉, 비급여 이다. 비급여란 보험에서 안나오는 치료비를 말하는데, 여기에서 이익을 남기는 것이다. 당연히 의사들은 이 비급여 항목의 개발과 실행에 열을 올릴 것이 아닌가? 이 비급여 항목의 대표가 바로 초음파 검사와 자기공명 영상촬영(MRI)이다. 그 외 "산전 진찰, 영유아 예방접종, 노인 의치, 다인실 이외의 병실료, 식대, 최신 의료기술 및 약품... 이런 부분들은 아직까지 모조리 환자가 전액 부담하게 되어있다."(딴지 일보 인용) 한마디로 돈 되는 것은 모조리 비급여이다. 돈이 들만한 항목이 비급여 인것도 문제이지만 쓸데 없은 사회적 지출도 살인적이다. MRI는 우리나라의 경우 3대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한다. 그런데 중소병원급에도 들어와 있다. 한 대에 수억-수십억짜리가 인구대비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들어온 나라가 우리나라이다. MRI는 한번 찍는데 40만원이나 하는 데도 비급여 항목이기에 수지타산이 맞기에 들여온 것이다. MRI를 도입한 비용도 낭비이거니와 도입후 어떻게 운용되겠는가? 세대만 있어도 되는 MRI가 개인 방사선의원급에도 도입되었으니, 결론은 말안해도 뻔하지 않는가? 비급여는 그럼 왜 생기는가?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정책은 저보험료-저수가급여 정책이다. 즉, 보험료를 적게 내는 대신 치료비중 보험공단-정부에서 내는 급여도 적게 지출하게 하는 것이다.

딴지일보에서 인용한 보험요율은 다음과 같다. 1998년 현재 공무원의 보험료율독일 : 13.4% , 프랑스: 18.3% , 일본: 8.5% 대만 : 8.0% , 한국: 4.2% 이렇게 적은 저보험료로도 의료 보험을 지탱하려니 당연히 저수가 급여를 하여야 할 것이고 이 와중에 의료보험-건강보험은 보험이 보험이 아닌, 무늬만 보험이 된 것이다. 환자가 50%를 부담하는 것이 어찌 보험이라고 하겠는가? 보험아닌 보험, 건강보험에서 환자가 부담하는 것이 바로 비급여인 것이다. 이러한 비급여를 통한 편법진료로 수입을 벌충한 것이다. 당연히 편법진료는 더 많은 사회적 지출과 환자나 보호자의 부담을 가져온다.

그리고 또 하나가 손해를 벌충하는 방법이 약값 마진이다. 즉 진료비의 손해를 약값마진 + 교통사고 진료비 + 비급여로 벌충 해온 것이다. 그런데 이미 교통사고 환자도 이제 의료보험환자와 수가가 같게 되었고, 약값마진도 없어진 것이다. 문제는 이 약값마진을 없에기 위해 의약분업이 동원 된 것이다. 물론 의약분업은 실행되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의사들의 지랄에도 강행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여기에 또 건강보험이 나온다. 한마디로 지금 건강보험이 파산 직전이다. 파산 직전인 이유는 두가지이다. 저보험료와 관리비이다.

딴지일보에서 인용하면 의료보험이 "관리비' 명목으로 14%의 의료보험료를 지출한 것으로 되어있다. 관리비(14%) = (국민한테 걷은 돈- 의사병원약국에 준 돈)/국민한테 걷은 돈 곱하기 100. 좀 많아 보이지 않는가? 참고로 국민보험제도를 시행하는 나라에서 이 비율이 5%를 넘는 나라는 내 기억에는 없다. 스칸디아비아 반도 국가는 이 비율이 영점 몇 퍼센트이다." 관리비와 저보험료로 파산 직전인 정부가 선택할 길은 무엇인가? 보험료를 올리거나, 진료비를 줄이면 된다. 보험료를 올리자니 국민의 저항이 뻔하고, 결국, 생색나게 선택한 것이 의약분업을 통해 진료비를 줄이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희한한 것이 또 있다. 정부가 의사의 담합을 강제하는 것이다. 모든 치료비를 똑같이 받게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의대를 갓 졸업한 인턴이 수술하든 수 십년의 경력을 지닌 의사가 수술을 하든 치료비는 똑같다. 정부가 담합을 강제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저수가로 묶어 두기 위해 강제로 진료비를 결정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성어린 진료가 교과서적으로 가능할 것으로 본다면 웃기는 일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정성어린 진료가 가능했던 것은 피눈물나는 인턴, 레지던트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다. 담합을 강제해도 의사들이 받아들인 이유는 의료의 공공성 때문이고 이러한 의료의 공공성이라는 대의명분에 짓눌려온 전공의가 이번에 전공의가 파업의 선봉장으로 나선 것도 이러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의사를 가난하게 만들자. 그럼 어떻게 될 것인가? 의사질의 하락이 아니면 편법진료가 더 많아 질 것은 뻔한 것 아닌가? 더불어 양심적인 의사가 오히려 몰락하고 비급여에 열을 올리는 의사들이 잘살게 되는 구조가 될 것은 뻔한 일이다. 그리고 편법이 정당화 되는 부분과 정당화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약간 의미가 틀릴 수는 있으나 초음파 검사는 급여가 되지 않는다. 의사들이 방사선과 의사에게 초음파 검사를 맡길 것을 자기가 직접하고, 과잉으로 하는 것도 있지만, 불법적이거나, 비양심적인 진료는 의사들 상호간의 감시로도 어느 정도 제동이 걸린다. 의사들의 수입이 줄면, 과잉진료(필요 없으나 환자에게 경제적인 문제 외에는 해롭지 않은 진료로 정의한다), 비양심적인 진료 (환자에게 해로울수도 있는 진료)가 늘어난다.

필자, 지금 종합병원에 근무하고 있지만, 환자가 해달라는 과잉 진료만 최대한으로 해도 수입이 1/3이상 늘게 할수 있다. 의료가 고도의 전문성과 독점성을 가지고 있기에 가능하다. 이러한 실정에서 의사의 수입을 더 감소 시키면 비양심적인 진료가 늘게 될 것은 뻔하다. 이러한 비급여가 늘어나고, 과잉진료, 비양심적인 진료가 늘어나면, 정부의 지출은 늘지 않더라도 국민의 의료비 지출, 사회적 지출은 오히려 증가할 것이다. 한마디로 양심적인 진료를 통해 투자에 대한 소득이 적자가 되는 시점에서 의사의 수입이 얼마나 되는가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 하다는 말이다. 한 경제 연구소에 의하면 의사의 적정수입은 400-500만원이라고 한다. 이미 이 수준까지 내려온 의사들도 많다. 전공의가 아니라 전문의중에 이 수준까지 내려온 의사가 있는 수준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의사들이 지랄을 하게 된 것이다. 이제 의사들은 왜 가난하면 안되는가 하는 것은 왜 감정적이고 문제 해결이 안 되는 질문인가 알았을 것으로 믿는다. 가난하게 만들면 편법이 유행하고 편법은 더 많은 비용이 들고, 양심적인 의사의 몰락을 가져온다. 그래서 의사가 더 이상 가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럼 대안은 무엇인가? 원론부터 말해보자.
이는 정부나, 국민의 의료 철학에 달려있다. 즉 의료를 자본주의적으로 운용할 것인가, 사회주의적 색채를 띤 복지주의로 나갈 것인가 하는 의료철학에 달려 있다. 자본주의로 간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시장의 원리를 도입하여 사보험을 도입하여 망하든 말든 공보험, 즉 건강보험과 경쟁하게 하여, 돈있는 사람은 고급치료를 받게하고 돈없는 사람은 공보험에만 의지하게 하면된다. 아니면 사회주의적요소, 고등학교 교과서에서 나오는 대로 수정자본주의로 운영하면 된다. 즉 복지주의의 개념으로 의료를 사회통합의 도구, 재산 재분배의 기능을 하게 하면 된다.

자본주의하에서 의료는 그 공공성 때문에 복지주의가 가능하다. 복지주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OECD국가의 1/10도 안되는 복지 관련예산(1.88%)을 서유럽처럼 10% 가깝게 올리지는 못할지라고 5% 이상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가진 자들의 말도 안되게 낮은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같은 비율로 내는 보험료는 가난한 사람들이 적게 병의원을 찾게 되는 접근성이 떨어지기에 없는 사람 돈을 있는 사람에게 보태주는 제도이다. 쉽게 말하면 비급여 항목과 환자의 부담을 낮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는 한 모양만 복지주의이고 실제는 자본주의적인 기형적인 보험제도에서 환자들은 자기부담과 비급여의 부담으로 부익부, 빈익빈을 강화할 것은 뻔하지 않는가? 즉 의료가 저소득층과 고소득층의 빈부격차를 줄이는 국민통합의 도구가 될려면 의사를 가난하게 만드는 것은 아무런 해결책이 되지 않고, 복지예산을 늘리고, 고소득층의 의료보험료를 높이는 것이 우선 순위이다.

덛붙여 말한다면 현재의 의약분업은 정부의 저소득층의 의료에 대한 접근성을 방해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긍정적으로 의약물의 오, 남용은 강제 의약분업으로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지만 저소득층의 의료기관이용율이 급격하게 저하되고 있다. 차선책은 선택의약분업을 주장한다. 현재 의약분업은 약사들의 배째라를 막을 수가 없다. 실제 예를 들겠다. 부스코판과 스파몬이라고 배탈나서 장운동이 증가 하여 배가 아플 때 먹는 약이 있다. 필자가알기로는 대한민국에서는 이 두가지가 가장 흔히 쓰는 약이다. 작용은 같지만 성분은 다르다. 필자는 이 두가지 약중에 부스코판은 잘 안쓴다. 이유는 스파몬보다 심각한 부작용이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파몬을 처방했더니 약국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 스파몬은 없고 부스코판이 있다고. 환자가 다시 다른 약국 찾아 고생할 것을 생각하여 할수 없이 이건 대체조제수준이 아니라 아예 약을 바꾸는데 동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부스코판 먹고 의료사고 생기면 당연히 모든 책임은 내 책임이다.

의약 분업계도 기간 한달하고도 15일이 지났는데도 대한민국의사들이 가장 흔히 쓰는 진경제조차 구비하지 않고 약사들이 이렇게 배째라 정책으로 나오는 것이다. 솔직히 필자, 이런 일 몇번 겪으면서 강제의약 분업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입장이었지만, 이제 절대로 불가로 돌아섰다. 적나라하게 말하면, 의사들, 도둑놈이지만 약사도 의사 못지 않은 도둑놈이란 것을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팔고 싶은  약만 팔겠다는 약사들의 배째라가 고쳐지지 않는한 강제 의약 분업, 하면 안된다. 약을 약국에서 사먹든 병의원에서 사먹든 선택은 국민들이 하게 하는 선택분업을 해야 한다. 물론 환자들이 처방전으로 약국에서 약을 사먹는 것이 경제적으로 이익이 되 게하여야 자연스럽게 의료비 지출이 줄고 불편도 덜 한 의약분업이 될것이다. 아직도 의약분업의 당위성만을 말하는 사람들, 현실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고 우리의 의료문화도. 병의원에서 주사제를 안 주면, 이제껏 환자들이 하는 말이 주사 안맞을 바에야 약국가지 무엇하러 병원에 왔겠느냐고 하는 주사를 선호하는 의료문화를 바꾸어야지 이런 어설픈 강제 분업으로는 절대로 약물 오남용이 줄어들 것 같지가 않다. 항생제 오남용도 실제는 약사들이 더 오,남용했다는 것은 불문가지아닌가? 쿠싱증후군이라는 병이 있다. 이것은 스테로이드라는 호르몬제를 장기간 사용할 때 생기는 병인데, 한마디로 온몸이 멍드는 병이다. 주로 피부병과 관절염에 사용하는데 그 약효는 환자들의 표현을 빌면, 잘 걷지도 못하던 환자가 날아갈 것 같다고 표현할 정도이다.

문제는 장기간 사용하면 몸이 총체적으로 망가지고, 이 병을 약국에서는 해결할 수가 없어 결국은 그 부작용을 의사가 치료하게 되는데 필자의 의사생활중, 이 병의 80-90%가 약국에서 약을 사먹은 환자들이었다. 그러므로 약물 오남용의 원인을 의사에게 있는 듯이 말하면서 강제 의약분업을 실행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 편견에 불과하다. 그 다음 의사들이 항생제를 남용하는 가장 큰 이유가 필자는 의사와 환자간의 불신이라고 본다. 무슨 말이냐고 하면, 발리 증상이 좋아지지 않으면 쉽게 능력 없는 의사로 생각하는 불신이 강한 약효를 지닌 약을 쓰게 만들었다는 뜻이다.

결론 :

1. 정부는 강제 의약 분업을 철회하고 선택 분업을 거쳐 강제 분업으로 가야한다.이것이 우리의 의약 일체의 의료문화에 부합하고 국민의 부담과 불편을 최소화하는 현실적인 방법이다.

2. 무늬만 보험인 건강보험을 현실적으로 보험이 되게하고, 비급여가 최소화되게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 복지예산을 5%이상 되게 하여야 한다. 고소득층의 보험료를 인상시켜야 한다. 5대 재벌그룹 회장의 보험료가 10-20만원이라니 개도 웃을 현실이 아닌가?

3. 전공의도 명분만 앞세우는 완전 분업을 고집할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택분업, 즉 임의분업을 거쳐 완전 분업으로 가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 현재 완전분업을 고집하는 것은 다른 면으로는 분업을 무산시키려는 의도로 의심받는 것도 현실이다.

4. 무엇보다 의사를 포함한 기득권층의 부정부패가 사라져야 한다. 의사, 약사들의 부정부패도 이 사회의 총체적 부정부패보다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다는 것이 필자의 의견이다. 랜딩비나 리베이트, 비급여, 과잉진료 없이, 즉 편법 없이도 기회균등 속에서 노력의 대가가 주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5.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대화가 이루어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물론 의사파업은 국민들에게 감당하기 어려운 불편을 주고 생명과 건강을 위협하지만, 실력행사가 아니면 들은 척도 않는, 문화를 그대로 두고 의사만 비난하는 것도 문제가 아니겠는가?

6. 의료의 공공성을 생각한다면 의대 등록금을 획기적으로 낮추어야 한다. 한학기 등록금이 400만원이 넘는 지금 현실정은 의사가 되어 잘사는 것이 아니라 잘살기에 의사가 될수 있다. 그럼으로 등록금을 낮추어 의사들이 현 수입감소를 받아들이게 하여야 한다. 못가진 서민들도 의사 되는 자본주의적 신분제도가 고정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인터넷한겨레 2000/8/16]

전공의 이젠 진짜 싸움을 하자

 

전공의들이 병원으로 돌아온다. 계절은 그 새 두 번이나 바뀌었다. 돌아올 간의 모습도 떠나올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다. 전공의비대위 위원장은 참담한 심정으로 투쟁의 패배를 선언한다”고 했다. 패배의 원인은 “국민을 싸움의 주체로 이끌어내지 못한 전략의 오류 때문”이라고 했다. 국민이 전공의들의 싸움에 등을 돌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진솔한 자기고백으로 들린다. 그러나 해석의 여지는 남는다.

한 전공의는 “싸움이 복잡하게 진행되면서 국민 친화적인 구호가 묻히고 만 탓”이라고 했다. 일리가 있다. 한 때 국고지원 50%를 핵심 요구사항으로 내걸었으나, 의·약·정 협상과정에서 약사법 조항에 매달리다 보니 자연 소홀해질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협상이 끝났을 땐, 의사 내부의 혼란을 해결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전공의들이 국고지원 50%를 외칠 때에도 국민의 눈길이 곱지 않았다는 사실은 어떻게 봐야 할까?

의사들의 투쟁방식에 반대했던 언론과 시민단체를 관제언론과 관변단체로 못박았던 의사들로서는, 그 이유도 이들의 음모에서 찾고 싶어할지 모른다. 그러나 설령 그런 음모가 있었다 해도, 국민은 그렇게 어리숙하지 않다. 어쩌면 패배의 원인은 국민을 보는 전공의들의 이런 시각에 있었는지 모른다. 국민을 위한 의약분업과 의료개혁이라는 구호 속에서, 국민은 늘 수동적인 대상이었을 뿐이다. 전공의들은 약사와의 관계를 얘기하기에 앞서 국민과의 관계를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 돈을 내고 진료를 받는 국민과 결정권을 나눠가져야 했다.

전공의 대부분이 진료현장으로 돌아왔다. 전공의들의 말대로,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료현장에는 아직도 온갖 의료 부조리가 남아 있고, 그 고통은 대부분 환자와 그 가족의 몫이다. 그들이 바로 국민이다.

[한계레 2000년 11월25일  안영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