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태 선생에 대한 회고

 

 

김현태 선생(강남성심병원 임상병리과장)이 병고를 극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지 2주년이 되었습니다. 여전히 기억의 뇌리에 맴도는 김선생의 마지막 족적을 찾아 보았습니다. 우선 미국연수중 보내왔던 2편의 전자우편을 발견했는데 하나는 미국생활 정착 단계에서 보낸 것이고, 하나는 간암 진단을 받은 후 귀국 직전 우리 의국원들에게 띄웠던 사연입니다. 이러한 사연을 파악하지 못하고 보냈던 개인 답신도 소개합니다.            

      [2002년 3월 10일  조현찬]

 

Sun, 25 Apr 1999 18:56:09 -0400

교실 식구들은 모두들 안녕하신지요. 한달전 서울을 떠나 이곳에 왔던 날은 무척 춥고 바람이 심했답니다. 그러나 금방 따뜻해져서 지금은 온천지에 수선화, 히야신스, 개나리를 비롯한 온갖 꽃들로 무척 아름답습니다. 제가 일하는 Case Western Reserve 대학의 병리학연구소 신경병리과인데 클리블랜드(Cleveland) 시내에 소재하고 있습니다. 병리과 건물은 강남성심병원의 본관 정도로 4층 건물입니다만 규모나 인력, 시설면에서 너무 엄청나서 처음에는 무척 놀랐습니다.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무척 친절하고, 일본, 중국, 소련, 인도, 영국, 스페인 등 여러나라에서 모여온 사람들과도 재미있게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 집은 병원에서 약 30분 정도 떨어진 아파트입니다. 아침 츨근길에 차에 치어 길에 널려진 다람쥐만 아니면 시골길과 바다처럼 넓은 호수(5대호 중의  Erie)가 바라보이는 고속도로, 아름다운 공원을 다니는 것도 큰 즐거움입니다. 좋은 소식 많이 전해주시고, 안녕히 계십시오.

              Hyoun Tae Kim,          7571B Basswood Court, North Royalton, Oh 44133

              h.kim@mciworld.com   ☎ 216-368-3671(Office), 440-230-0027(Home)

 

Sun, 17 Oct 1999 20:04:49 -0400

모두 안녕하신지요. 서울이나 춘천 모두 본격적인 가을이겠군요. 그 동안 별로 하는 일도 없는 것 같은데(?) 늘 정신 없이 살다보니 연락을 못드렸습니다. 이제는 이곳 생활도 익숙해져서 큰 불편은 없고, 조금 정신을 차리고 보니 벌서 돌아갈 시간이 다가 오고 있습니다.

미국 동북부의 가을답게 이곳 또한 매우 화려한 풍경을 볼수 있군요. 얼마전 길을 걷는데 머리에 돌덩어리가 떨어지는 줄 알았더니 밤알 만한 떡갈나무 열매가 인정사정 없이 내려치더군요. 이곳은 군이 많이 오는곳이라서 추위를 초강성으로 타는 저로서는 겨울을 지날 일이 큰 걱정이군요. 눈사람처럼 옷을 많이 입고 다녀야지요.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간절히 기원하면서... 모두 안녕히 계셔요.

1999년 10월 17일 Cleveland에서  김현태

김현태 선생에게

그 동안 소식 전하지 못한 불찰을 용서바랍니다. 클리블랜드의 날씨도 추워졌겠습니다마는 이곳도 몇일전 첫 얼음을 볼 수 있는 추위가 있었습니다. 1주일 전에는 천안 상록회관에서는 임상병리학회가 있어 교실 의국원들이 모두 만날 기회를 가졌습니다. 여기서는 우리 의국원들이 매일매일 쉽게 소식을 접할 수 있어 변화를 실감있게 느끼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하나하나씩 따지고 보면 많은 변화는 있다고 해야겠죠. 오늘 아침 이경화 선생은 New Orleans에서 개최되는 HLA 학회 참석을 위해 떠났고, 나는 지난 10월 1일자로 의료분석실장에 연임되었고, 이규만 선생님께서는 9월 1일자로 주임교수에 연임, 이영경 전강은 조교수대우로 승진했습니다.

임상병리학회 일로는 차기 이사장에 권오헌, 회장에는 최태열 선생님이 선출되었습니다. 임상병리학회 회원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기 때문인지 또는 열심히 공부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런지 해마다 발표연제도 증가한다는 느낌입니다. 특히 해외연수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발표내용들이 돋보였습니다. 우리 교실에서도 김현태 선생의 귀국후 보다 활발한 학술활동을 기대해 봅니다. 아무쪼록 가족 모두 건강하시고 바라는 일 하나하나에 행운과 보람이 같이하는 날들이길 기원합니다.

                                                                        1999년 10월 19일   조현찬

 

    영결식에서 고인에 대한 약력 소개

성철과 성범에게는 그토록 인자했던 어머니, 홍경표 교수의 사랑했던 내조자, 제자교육과 진료, 그리고 학술연구에 정렬을 불태우고자 했던 우리들의 학문적 동지인 김현태 선생의 서거를 슬퍼하며 삼가 영전에 약력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선생은 1956년 7월27일 수도 서울에서 김종협과 권기순의 장녀로 태어나 유복한 가정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으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1975년 서울사대부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습니다. 중앙의대에서는 유능한 의사와 교수로서의 꿈을 키웠고, 필동병원에서의 수련과정 중에는 임상병리학교실의 첫 번째 전공의로서 후배들을 이끌었습니다. 1985년 중앙대 임상강사로 발령받아 교수직분으로 역량을 키웠고, 대학원에서는 급성백혈병 연구로 의학석사, 골수세포 배양의 세포화학 연구로 의학박사 학위를 같은 동료중에서는 가장 먼저 취득하였습니다.

1994년 한림대에 부임하면서 조교수 발령을 받았고, 1996년에는 부교수 승진과 함께 강남성심병원 임상병리과장으로 임용되었습니다. 고인은 작년초 더 늦기 전에 더욱 많은 것을 배우겠다는 큰 뜻을 품고 미국에서 연수생활을 시작하였습니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익혀 1년후 귀국해야할 날자가 3월12일 오늘이었습니다. 고인에게는 그 동안 임상병리학회 평위원으로서 임상화학 전문분과 위원으로서 봉사해 왔으며, 국제화학회 정회원으로 학문적 활동을 넓혀 왔습니다.

그러나 고인에게 그토록 애쓰시며 뿌리고 가신 고귀한 밀알은 저희들이 반드시 갋지고 알찬 결실을 맺도록 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000년 3월12일

한림의대 임상병리학교실

               趙 顯 燦   伏拜

     

    강남성심병원 임상병리과장

    한림대학교 의과대학 임상병리학교실 부교수

    1956년 7월27일 --- 2000년 3월11일 (44세)

 

1972-1975    서울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1975-1981    중앙대 의과대학 의학과

1982-1984    중앙대 대학원 석사과정(의학석사)

                   논문: 급성백혈병의 세포조직화학적 연구

1984-1988    중앙대 대학원 박사과정(의학박사)

                   논문: 골수세포 배양의 세포화학 염색성 연구

1981-1985    중앙대의료원 필동병원 전공의

1985-1994    중앙대의료원 필동병원 임상강사

 

1994년  3월 1일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임상병리과 조교수 부임

1996년  4월 1일  한림대 부교수

1996년 11월 1일  강남성심병원 임상병리과장

1999년  3월        Case Western Reserve 대학 병리학연구소 연구원

 

대한임상병리학회 평위원, 진단면역분과 위원

미국임상화학회(AACC) 정회원, 대한임상화학회 이사


 

    한림대임상병리학교실

    김현태 선생을 추모하면서

강남성심병원과 임상병리학교실 발전의 디딤돌을 마련하고 떠나시는 선생은 그 동안 병마와 싸우면서도 병원과 교실일을 걱정하고, 동료들에게는 끝까지 걱정되는 일을 주지않으려고 노력하셨습니다.

할 일이 많다면서 휴일에도 출근하시던 그 모습! 선생의 학생교육과 학회 관련 잡무들을 스스로 떠맡아 가장 많은 고생을 하셨지요. 또한 늦기 전에 더 배워야겠다는 의지로 가족을 국내에 남겨두시고 해외연수 떠나시던 그 모습! 병상에서 병마의 고통을 참으시면서도 즐거운 이야기만 남겨주시고자 웃음을 잊지 않으시던 선생은 이제 저의 곁을 떠났습니다.

선생께서 못다 이루신 일들을 하나하나씩 거두어 들이겠습니다마는 우리 의국인들이 선생의 인고를 얼마나 이해하고 배워갈 수 있을지 두렵습니다. 먼 하늘나라 안드로아메아 성좌에서도 항시 지켜봐 주시고 가르침 주소서. 떠나시는 길 부디 평안하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