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승종(玄勝鐘) 총장님에 대한 단상

 

 

한림대 현승종(85·사진) 석좌교수가 오는 8월 31일 퇴임식을 갖고, 9월 1일부터 고려중앙학원(고려대학교) 이사장으로 부임한다. 현승종 석좌교수는 1984년 한림대가 개교한 2년 후 학장, 종합대학으로 승격한 후에는 초대 총장, 그리고 한림과학원 원장으로 항상 한림대학교 발전사의 중심에 서있었다. 그런 현승종 석좌교수가 한림 가족에게는 여전히 대학의 최고 수장인 현총장으로 불리고 있다.

현총장님을 개인적으로 처음 뵙게된 것은 1986년 10월22일 강동성심병원의 개원시 중앙검사실을 들렀을 때였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도입했던 Hitachi 737 모델의 자동화학분석기를 설명했더니만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계속 주의깊게 이리저리 훑어보시던 기억이다. 그후 병원과 의료원 간부직을 역임하면서 뵈올 기회는 자주 있어지만 가까이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간은 2003년 7월30일 일송문화관 개관식이 끝난 후 청포대해수욕장을 들렀다가 상경하는 길이었다. (사진은 청포대해수욕장에서 저녁노을을 등지고 찍었던 사진)

2시간 동안 옆좌석에 앉으셨던 현총장과 다양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최근에는 국제아동기금(유니세프) 총재로서 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는 일은 젊은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 가장 보람 있고 즐겁다고 하셨다. 그리고 끊임없이 활동한다는 것은 하늘이 내려준 생명에 대한 보답이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오늘 Ellis Rubinstein 뉴욕과학아카데미 회장의 명예박사학위 수여식이 있어 춘천에 들렀는데 오랜만에 만나뵈올 수 있었다. 한림대학을 떠나게 되면 이젠 먼발치에서도 직접 뵈옵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에 멀어져가는 현총장님 모습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현총장께서는 60여년간 우리나라 교육의 민주화와 인간화에 헌신한 국내 교육계의 산증인이다. 평안남도 개천군이 고향으로 평양고보(1938)와 경성제국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미국 튜레인대 법과대학원을 수료했으며 고려대에서 명예법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6년부터 28년간 고려대 법대교수를 역임했으며 1974년부터 1980년까지는 6년간 성균관대 총장을 맡았다.

한림대 설립자인 고 윤덕선 박사와 동문 수학한 사이로 1984년부터 한림대와 인연을 맺었다. 한림대 교수와 학장, 초대총장, 1993년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교수·원장, 같은해 건국대학교 이사장으로 취임하여, 국제연합아동기금(UNICEF) 한국위원회 초대회장, 대법원 사법제도 발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직책인 한림과학원 석좌교수는 2003년 5월부터 맡아오고 있다. 1996년 노사관계 개혁위원회 위원장, 춘강기념사업회 회장을 지냈고, 1997년 성균관 건립 6백주년 기념사업회 회장이 되었다.

주요저서로 `로마법개론' `로마법원론' `법사상사' `서양법제사' `민법' `비교법입문' `로마법' `게르만법' 등이 있으며 법사상사 법사학, 비교법 및 민법분야에서 탁월한 연구업적을 남겼다. 1991년에는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장, 1992년에는 국무총리를 맡는 등 행정가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04년 8월 22일]

 

[응접실]현승종 한림과학원 석좌교수

 -“부드럽게 속도조절해야 파열음 없죠”

한림대 한림과학원 현승종(86)석좌교수가 오는 31일 퇴임식을 갖는다. 고려중앙학원(고려대) 이사장에 내정된 현교수는 “급격한 변화 추구는 사회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며 “교육분야도 정부가 너무 관여하는 것보다 대학자율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또 “강원도는 제2의 고향으로 강원도민들의 순수함과 따뜻한 인정을 잊지 못할 것”이라며 “비록 몸은 떠나지만 강원도를 사랑하는 마음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했다.

 -오늘의 한림대가 있기까지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는 것이 학내외의 평가입니다.

“설립자인 고(故) 윤덕선박사의 뜻을 제대로 뒤받침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대학 설립의 기획단계부터 관여해 20년 이상을 한림대와 인연을 맺었습니다. 설립당시 눈에 띄지 않는 사립대였지만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석학들을 모시고, 설립자가 과감하게 재정지원을 해 짧은시간에 인정받는 대학으로 급성장했습니다. 역사는 짧지만 유수한 대학으로 완전히 자리 잡았습니다. 강원도민들의 남다른 관심과 지원도 큰 힘이 됐습니다. 이상우총장취임이후 한림대는 무섭게 발전하고 있어요. 제2의 도약을 하고 있습니다. 한림대의 도약은 춘천뿐만 아니라 강원도 발전에도 고무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입니다.”

 -고려중앙학원이사장에 내정됐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귀소(歸巢)의 즐거움으로 보면 됩니다. 사회생활을 고려대에서 처음 시작했어요. 보성전문이 고려대로 승격된 1946년 9월, 27살의 나이로 부임해 30년간 봉직했습니다. 4·19 당시 학생처장을 맡는 등 고려대에서 잔뼈가 굵었어요.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고려대와 인연을 유지해 왔습니다. 제 기질도 고려대입니다. 임기는 4년이지만 사실 임기를 채운다는 욕심은 전혀 없습니다. 저보다 젊은 적절한 후임자가 나오면 곧바로 그만두게 될 것입니다. 이젠 나이도 너무 많아요. 과도기에 이사장직을 맡았다고 보시면 됩니다.”

 -한국대학이 나가야 할 길은 무엇인지요.

“학문과 지식사회는 초고속으로 변화하고 있지 않습니까. 20세기말부터 무한경쟁시대에 돌입했습니다. 대학들은 급격한 변화에 따라가기 위해 몸부림 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대학들의 개혁에 대한 의지가 부족합니다. 무한경쟁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앞서가기 위해서는 환골쇄신하는 대변혁이 필요합니다. 대학종사자들의 정신변혁이 이뤄져야 될 것으로 봐요.”

 -한국사회가 극도로 양극화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많은데요.

“급격한 변화는 계층간 괴리와 사회의 분열을 불러 올 수 있어요. 이를 메우기 위해 과격한 방법은 별로 도움이 안된다고 봐요. 정부는 정책의 속도를 서서히, 그리고 부드럽게 끌고 가야 할 필요가 있어요. 교육의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학교육의 경우 정부가 너무 관여해 문제가 생기고 있는 것입니다. 자율에 맡겨 대학간 경쟁을 부추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입니다. 시시콜콜히 관여해서는 안됩니다.”

 -핵문제 등에 따라 남·북관계의 변화가 심한데요.

“한국이 부드럽게 대하고 도와주는 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표면에 나타나는 북한정권의 행동만 밑고 안심하면 안됩니다. 저는 해방직후 좌·우대립과 전쟁 등을 모두 경험했어요. 자유민주적인 시각에서 도와주는 것도 좋지만 경계심도 필요합니다. 북체제로 통일이 되서는 안되잖아요.”

 -후학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씀은요.  그리고, 명예강원도민이신데요.

“급속히 변화하는 세계의 움직임을 읽고 미래를 내다보는 안목을 가져야 합니다. 뒤지지 않도록 각자가 진실되게 노력하고 맡은바 역할에 충실해야 합니다. 선진 외국에 비해 손색이 없는 나라를 만들어 주길 기대합니다.”  

“북한이 고향인 저는 제2의 고향 춘천을 잊을 수가 없어요. 고향같은 부드러운 때문이지요. 강원도민들의 따뜻한 인정은 다른 곳에서는 맛볼 수 없습니다. 개인은 물론 한림대가 강원도에 자리잡을 수 있었던 것도 강원도민들이 잘 돌봐 주었기 때문입니다. 명예도민증을 잘 간직하고 몸은 떠나도 마음만은 떠나는 일은 없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다시한번 강원도민들께 깊은 감사드립니다.”

현석좌교수는 1984년 한림대 교수로 부임, 학장 초대총장 한림과학원장을 차례로 맡으며 한림대가 명문 사학의 반열에 오르는데 견인차 역할을 담당했다. <2005-8-24 강원일보 金石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