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야기 

아내의 생일

    

  

  

  

저녁 늦은 시간에 대학에서 온 공문을 처리하고, 외국으로 보내는 전자메일을 작성하던 도중 딸애(수정)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오늘이 엄마 생일인데 알고 있느냐는 항의조의 내용이었다.

결혼생활 24년 동안 엄마 생일을 기억하고 제대로 챙겨준 적이 별로 없었다는 사실을 대충 짐작하고 있었기에 하는 말투였다. 딸애는 엄마에게 줄 생일선물과 조그마한 생일 케익을 준비했으니 11시30분까지는 귀가해 달라는 부탁도 덧붙였다. 

사실 가족에게 무관심하다 보니 아내 생일이나 결혼 날자 등 가족 대소사를 잊고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어떤 해에는 아내 생일 다음 날 어제가 무슨 날인지 물어왔을 때도 있었고, 가족 생일을 챙겨주지 못하고서도 왜 생일이 자주 오느냐는 농담조의 이야기에 무척이나 가족을 실망시킨 적도 있었다. 더구나 다른 부부들과 달리 외식이나 여행으로 아내를 즐겁게 해주었다는 기억도 없다.

그러나 최근 수년 동안은 아들딸이 성장하여 생일 케익만은 그런대로 준비하였으며, 수년 전에는 어느 백화점에서 먼저 아내 생일 날자를 알려주어 생일축하 꽃배달 서비스를 한번 받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남들은 아직 젊어 보인다는데 50살보다는 만 49세라는 나이로 생일을 맞고 싶다는 아내.

 

 

 

  

  

  

촛불을 준비하는 아들을 바라보면서 대견해 하는 모습

  

아들도 아르바이트 때문에 늦게 귀가하여 밤 12시가 되어서야 비로소 온가족이 모였다. 딸애는 용돈이 없어 생일 케익은 조그마한 것을 사왔다는 이야기이고, 생일 선물로는 평소 엄마가 갖고 싶었던 문정희 시집과 중국요리책을 준비하였다. 아빠가 준비한 것은 무엇이냐는 질문에 매달 가져다 주는 월급봉투라는 이야기에 아빠 같은 사람과 결혼한 엄마만 불쌍하다는 화답이었다. 

아들(재윤)은 엄마가 마흔아홉번 째 생일을 맞이하지만 쉰살이라면서 쉰살 나이에 맞게 촛불을 준비해 왔다. 그러나 아내는 쉰살이란 나이가 싫어서인지 49년째 생일의 촛불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다. 남들은 나이에 비해 젊어 보인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눈가의 깊어지는 주름살을 통해 많이 늙어졌음을 본다는 푸념도 했다.

생일을 맞으면서 한마디는 더하고 싶다는 이야기는 아들딸 잘 자라고 온가족이 건강하자는 것이었다.

 

 

 

중국에서 외교관으로 근무하는 처남 동생이 일시 귀국하여 같이 머무르고 있는데 생일이 서로 같다는 사실을 그 동안 간과해 왔다. 아무튼 한 개의 케익으로 두사람 생일파티를 하게되었다.

쉰살이란 나이에 두려움을 느끼고 더 늙어지기 싫어하는 아내가 내년에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 것인가. 병고중인 노모를 모시기에 하루라도 집을 비울 처지가 아니어서 남들과 같은 아내사랑 이야기를 만들 수 없음을 간혹 안타깝게 생각하곤 한다.

그러나 아내에게서 항시 해맑은 웃음이 떠나지 않고, 실망하지 않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남편으로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돌이켜 본다. 또한 아빠 같은 남편이 안되고, 아빠 같은 남자와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아들과 딸의 다짐에서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을 느끼면서....

 

[2001년 10월30일]

  

아내와는 3살 차이인데 우연히도 생일이 서로 같은 처남(46세, 중국 상해 한국영사관 총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