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열사의 분신

 

 

민주화운동 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1년 8월28일 제26차 회의를 열고 지난 86년 서울대 재학중 전방입소 반대농성을 벌이다 분신자살한 이재호, 김세진씨 등 150명을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들이 화상환자로 한강성심병원에 입원했던 당시를 회상하면서 그 족적을 더듬어 본다.

1986년 4월 28일 아침 서울 관악구 신림동 4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에서 서울대 총학생회 주관으로 400여명의 서울대 2학년 학생들이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를 외치며 가두투쟁을 전개하였다. 반전반핵 투쟁위원장 이재호, 자연대 학생회장 김세진은 전방입소 거부투쟁을 선도하던 중 예식장 옆 3층 건물 옥상에서 온몸에 신나를 뿌리며 진압 경찰에 분신으로써 맞섰다. 이재호는 전신 80% 이상의 3도 화상을 입었으며, 김세진은 전신 60%의 3도 화상을 입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반미투쟁이 급속히 대중적으로 확산되어 한국의 운동사에 일대 전기를 마련하게 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이재호는 당시 21세로 1965년 전남 광주에서 출생했고, 1983년 광주 송원고를 졸업하고 서울대 정치학과 입학한다. 1986년 3월 18일  반미 자주화 반파쇼 민주화 투쟁위원회 산하 '반전반핵 평화옹호 투쟁위원회' 위원장이 되었고, 1986년 4월 28일  전방입소 결사반대 및 반전반핵 양키고흠을 외치며 분신한다. 1986년 5월 26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운명했고, 현재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다.

위와 같은 기록으로 고 이재호군은 한달간의 처절한 투병생활을 겪었다는 점을 짐작할 수 있겠는데, 당시 필자가 근무했던 한강성심병원의 화상치료팀은 언론매체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어 모든 진료수단을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특히 화상부위가 깊고 넓어서 본인 피부조직을 생체외 배양하고, 세포를 증폭시켜서 이식하는 방법도 시도하였으나 생존기간이 짧아 효과를 기대할 수 없었다.

[2002. 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