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병리 전문의 제1호는 선덕재 교수

 

 

임상병리학회에서 발간한 회원명부에 의하면 전문의 제1호와 2호가 빠져있고, 제3호 이삼열 교수로부터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제1호는 누구일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 있겠다. 이에 대한 의문은 제1호 당사자인 선덕재 교수로부터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임상병리 전문의제도가 도입되면서 이 분야에 일하시던 많은 분들이 자격증을 받게되었는데 시험이 두차례 시행되면서 먼저 시험을 치루었던 분들이 우선순위가 앞섰고, 응시서류를 가장 먼저 접수시켰기 때문에 전문의 제1호의 영예(?)를 얻었다는 언급이었다.

선덕재 교수는 서울의대를 1957년도에 졸업하시고 수도국군병원 임상검사실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하셨다. 미국 유학생활중에는 혈액종양내과학을 전공하여 미국 전문의를 취득하셨고, 귀국 후에는 경희대에서 1975년부터 1977년까지 2년간 근무하셨다. 1977년 한강성심병원으로 부임해 오셨고, 1980년 강남성심병원 개원과 함께 내과 과장으로 부임했고, 1989년부터 3년간은 병원장으로 보직을 맞기도 하셨다. 강동성심병원에서는 1986년 개원당시 내과 과장을 역임하셨다.

한림대의료원 강동성심병원에서 같이 근무하는 동안 임상병리과에 대한 이해가 가장 깊었고, 혈액진단은 대부분 본인이 직접 현미경으로  확인하시곤 하셨다. 또한 진료시간 외에는 항시 국내외 저널을 손에 놓지 않으셨던 분이셨다. 대한혈액학회에는 거의 빠짐없이 참석하셔서 질문이나 코멘트를 가장 많이 하셨던 분이셨는데, 1990년부터 2년간 대한혈액학회 회장도 역임하셨다.

정년퇴임 후 대전선병원에서 잠시 근무하시다가 은퇴하셨는데, 지병으로 고생하시다가 2006년 여름에 별세하셨다. 그 동안 한림대의료원에서 정년을 맞은 임상교수진 모임에도 빠짐없이 참석하셨는데, 가족의 언급에 의하면 지인들에게 부담주기가 싫어서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가족들끼리 조용하게 상을 치루었다고 하셨다.

  

 [2006년 1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