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관광

 

 

[1989년 9월 4일]

뉴저지에 살고 있는 영애씨(아내친구)  가족의 작별인사를 뒤로하고 뉴욕 시내 관광부터 하기로 했다. 그러나 제일 먼저 들린 곳은 그 동안 알아왔던 유엔본부,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었는데 주차에 문제가 많아 잠깐씩 정차하고 겉모습의 기념사진 정도만 찍고 지나갈 수밖에 없었다.

점심식사는 간이식으로 끝내고 가장 먼저 리버티 섬에 위치한 자유의 여신상을 구경하기 위해 세계무역센터를 뒤로 하고 강변을 따라 배터리 공원 주차장으로 들어갔다. 아침부터 내리기 시작한 가을 가랑비가 오후까지 이어져 우의 2벌을 빌리고 몇가지 기념품도 샀다. 짖궂은 날씨여서 그런지 관광선을 타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대부분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어서 그런지 모두들 흥분된 표정들이었다. 유난히도 갈매기가 많았는데 관광선 위아래로 줄지어 따라오면서 길동무의 역할을 해주었다.

가까이에서 보는 자유의 여신상은 책자의 사진을  통해 익혀왔던 것보다 훨씬 높고 웅장해 보였다. 여신상을 뒤로하고 기념사진 몇장 찍은 후 내부로 들어갔는데 관광객을 위한 각종 현란한 기념품점이 먼저 눈에 띄었다. 수정이는 NewYork 이란 글귀가 씌어진 긴팔 티셔츠가 마음에 든다고 한벌을 집었다. 엘리베이터로 첨탑까지 갈 수도 있지만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이 많아 걸어서 올라가기로 했다. 꼭대기 첨탑에서 내려다보이는 맨해튼섬은 가랑비의 짖궂은 날씨였지만 갈매기떼와 함께 조화를 이루면서 그런대로 멋진 풍경을 자아내었다. 무엇보다도 고층빌딩 사이로 우뚝솟은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이 돋보였다.

돌아가는 길에 뉴욕에서 가장 높은 세계무역센터 빌딩이라 올라가 보자는 가족들의 의견이 있었지만 세계에서 가장 높다는 시카고 시어스 타워(432m)를 2달전에 구경했기 때문에 다음 기회로 미루었다. 세계무역센터는 작년에 모든 부대시설을 완성하여 일반인에 공개하는 것이어서 뉴욕 방문객에게는 필수적인 관광코스라는 이야기를 들어온지라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1989년 9월4일]


[2002년 7월 30일]

미국 올랜도에서 개최된 AACC 학회 참석후 귀국길에 다시 뉴욕을 들렸다. 숙소는 지난 해 9.18 사태로 없어진 세계무역센터 빌딩에서 한 블록떨어져서 소재한 Embassy Suites Hotel이었는데 6개월 동안 보수공사를 거쳐서 개관했기 때문에 매우 깨끗하고 조용했다.  

이번에는  1박2일의 짧은 방문기간이었고, 찌는 듯이 더운 여름철이어서 구경할 곳은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13년전에 올라가보지 못했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과 메트로폴리탄 예술박물관, 그리고 호텔에서 가까운 자유의 여신상을 다시 둘러보았다.

[2003년 2월 10일]

윤대원 이사장, 이광학 의료원장, 박형진 학장, 오세문 병원장(강동), 이병철 진료부원장(한림), 김용선 교수(일송생명과학연구소 소장), 서승진 교수(국제학대학원 원장), 서홍원 교수(약리학교실), 조현찬 교수(정보화위원회 위원장) 등 9명의 한림대 미국 방문단은 지난 2003년 2월10일부터 3일간 뉴욕 맨하탄에 위치한 컬럼비아 대학을 방문하였다.

한림대 대표단은 앞서 체결된 학술교류 및 인적교류에 관한 협약에 따라 컬럼비아 대학의 제반 실태를 상세하게 소개받았다. 대표단은 협약서에 근거하여 의과대학 학생과 교수진의 교류, 학술세미나 개최 등에 대해 빠른 시일 내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여 실행하기로 했고, 기타 제반 사항에 대해서도 계속 긴밀하게 협의해 가기로 약속하였다. 이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진행되었던 각종 회의 참가 및 토론, 관련시설 시찰 등 방문단의 동정을 소개하고자 ...... more

 

[2005년 7월 30일]

미국 컬럼비아 대학병원에서 연수생활로 바쁜

   한림대의료원 임상교수와 한림의대 학생들과의 만남 

미국 중부 애틀랜타(Atlanta)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받고, 플로리다 주의 올랜도(Orlando) Orange County Convention Center에서 열린 미국임상화학회 참석차 3일간을 머물렀다. 그리고 7월 28일, 다시 코네티컷 뉴헤이번(New Haven)을 거쳐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위치한 뉴욕 맨하탄에 도착하던 날은 여전히 30도를 오르내리는 삼복더위 날씨였다.

이곳 컬럼비아 대학병원에서 5개월째 파견연수 중인 박양호 교수(강동성심병원 치과)와 약속한 시간보다 늦은 11시 50분에 병원 구내  William Black Medical Research 빌딩에 도착하였다. 박양호 교수는 한림대의료원에서 파견연수 중인 모든 임상교수와 한림의대생들에게 미리 연락하여 기다리고 있었다.

한림대의료원의 편의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컬럼비아의대 정형외과 이영인 교수의 연구실 방문

같은 건물에 위치한 정형외과 이영인 교수(미국명 Francis Y. Lee)의 연구실로 먼저 안내를 했는데, 이 교수는 미리 약속을 하지 않았는데도 나의 방문 소식을 전해듣고 반갑게 맞이해 주었다.

이영인 교수는 작년 4월에 뉴욕-프레스비테리안 병원 대표단이 우리 의료원을 찾았을 때 국제협력 동아시아 담당 자문교수로 이들 방문단과 동행했기 때문에 구면이었다. 간단한 인사와 함께 컬럼비아대학 정형외과의 수련교육 프로그램과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에 대한 소개를 받았다. 또한 한림대의료원을 위한 일이라면 이곳에서 항시 관심갖고 도와주겠다고 했으며, 연구실을 떠날 때는 건물 밖까지 배웅해 주는 친절도 베풀었다. ...... more

 

볼거리 내용

 

자유의 여신상

미국 뉴욕항의 리버티섬에 세워진 거대한 여신상으로 무게 225톤, 횃불까지의 높이 약 46m, 대좌 높이 약 47.5m이다. 원래는 '자유는 세계를 비춘다(Liberty Enlightening the World)'로 불렸다. 프랑스 국민이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서 기증한 것인데 프레데리크-오귀스트 바르톨디(Frederic-Auguste Bartholdi)에 의해 1884년에 제작되었다. 같은 해  미국으로 옮겨져 1886년 10월 28일 미국 대통령 클리블랜드의 주재로 헌정식을 하였다.

대좌석 위에 세워진 이 여신상은 오른손에 횃불을 쳐들고, 왼손에는 '1776년 7월 4일'의 날짜가 적힌 독립선언서를 들고 있다.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머리부분 가까이까지 오를 수 있다. 2001년도 테러참사 이후에는 내부 구경이 금지되었다.

 

브로드웨이

맨해튼 남단의 배터리 공원 북동단에서 시작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배열된 가로망을 비스듬히 가로질러 북으로 통하고 있다. 연도에는 시청사 ·유니언스퀘어 ·매디슨스퀘어 ·타임스스퀘어 ·센트럴파크 ·컬럼비아대학 등이 있다.

중심 상점가로, 고급상점 ·백화점 ·극장 ·영화관이 많다. 타임스스퀘어를 중심으로 하는 거리에는 뮤지컬을 비롯한 쇼 관계의 극장이 많으며, 특히 이 부근만을 브로드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특히 32번가는 재미한국인들이 뉴욕시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로 95년 ‘한국의 거리(Korea Way)’로 명명되었다.

엠파이어 빌딩

엠파이어 빌딩은 1931년에 4000만 달러를 들여 만들어졌으며 높이가 381m로 오랫동안 세계에서 제일 높은 빌딩이었으며 뉴욕의 상징물이었다.

현재는 그 주위로 한인타운이 형성되어있다. 1986년 국가 기념물로 지정이 되었으며 86층과 102층의 전망대가 있다. 그러나 120Km 까지 보인다는 102층 전망대는 한번 올라가볼 만한 곳이라고 하지만 2002년 8월1일 방문 당시에는 86층까지만 올라갈 수 있었다. 위치는 34th 6 Ave에 있으며 하루 평균 7000명, 연중 300만명이 찾는 곳이다.

 

세계무역센터

뉴욕 세계무역센터(World Trade Center)는 지난 73년에 완공된 110층의 초고층 쌍둥이 빌딩으로 높이가 417m로 당시에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다. 이 빌딩은 약 25만평의 사무공간이 들어 있는 트윈 타워(twin tower)와 강철 구조에 유리벽을 입힌 110층 짜리 마천루로서 폭이 63m인 건물 정면은 미리 조립된 강철격자를 사용했다.

1960년대 초 도시 재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설계돼 1970년 첫번째 건물들이 완공된 세계무역센터 단지의 건설에는 모두 12억달러가 투입됐고 지상면적은 6만4천700㎡(16에이커) 나 된다. 세계무역센터 단지 내에는 쌍둥일 빌딩을 포함해 모두 7동의 건물이 있다. 1976년 완공돼 국제무역의 핵심 중추 역할을 해온 쌍둥이 빌딩은 창문이 4만3천개, 엘리베이터가 99대의 초대형 건물로서 한 때는 세계 최고의 마천루이다. 또 당시 고층 빌딩 건축에 주로 사용하던 강철 골조 대신 연직(鉛直) 방향과 수직방향의 합성력을 받도록 하는 로드 베어링(load-bearing) 강철벽으로 특별히 견고하게 설계됐다.

1988년 마지막 건물이 완공되면서 세계무역센터는 상품거래소, 주요 투자회사, 은행, 법률회사, 호텔 등 수많은 기업을 끌어들였다. 모든 사무실이 임대돼 공실이 없는 상태인 이 센터는 관망대와 기타 눈요깃감들이 많아 5만여명의 고정 근무자 외에 매일 9만명의 관광객들이 몰린다. 


2001년 9월 11일 오전 7시 59분, 92명의 승객을 태우고 미국 보스턴에서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아메리칸항공 소속 AA11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해 8시 45분 세계무역센터 북쪽 건물과 충돌하였다. 이어 8시 14분, 65명의 승객을 태우고 역시 보스턴을 출발해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유나이티드항공 소속 UA175 항공기가 항로를 이탈해 9시 3분 세계무역센터 남쪽 건물과 충돌하였다. 9시 50분 남쪽 건물이 붕괴되고, 곧이어 10시 29분 북쪽 빌딩마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또 두 건물이 붕괴되면서 인근 건물에도 막대한 충격이 가해져 오후 5시 25분에는 무역센터의 제7호 건물마저 완전히 주저앉았다.

두 대의 항공기 납치범들은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의 부호이자 국제 테러리스트인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조직한 알 카에다의 조직원들이거나 빈 라덴과 연결된 다른 이슬람 테러 집단의 소행으로 알려지고 있지만, 2003년 현재까지도 확인되지는 않고 있다.

이 사건으로 두 대의 항공기 탑승객 전원이 사망하고, 건물 안에 있던 2,500~3,500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되었는데, 실종된 사람들 모두가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쌍둥이 빌딩에는 총 25만 2900평에 이르는 사무공간이 있는데, 상주인구 5만 명, 하루 평균 유동인구 13만∼15만 명이며, 사고 당시 모건스탠리·시티뱅크 등 세계적인 금융·투자기관과 유명 대기업을 비롯해 한국의 현대증권·동원증권·LG보험·LG증권 등 430여 개의 업체가 입주해 있었다.

연수익은 임대료 등을 포함해 총 2억 달러 정도이며, 2000년 7월 부동산 업체 '실버슈타인 프로퍼니스'가 건축주인 뉴욕 항만청 등으로부터 이 건물을 99년간 장기 임차하면서 32억 달러를 지불했다. 2001년 11월 실버슈타인은 향후 5~7년 이내에 60층 미만의 건물을 다시 짓기로 결정하고, 희생자의 넋을 기리는 추모관도 건립하기로 하였다. 다시 지을 경우 30억 달러 정도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2002년 이듬 해 7월초 건물 잔해가 모두 치워졌으나, 7월말 현재 주위 빌딩건물은 여전히 보수공사가 진행중이었다. 9·11테러 2주년을 맞이하는 미국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그라운드 제로’ 현장에는 재건축이 한창 진행되고 있다. 이곳에서 열릴 테러 2주년 애도행사에서는 유가족들이 2,800여명의 희생자 이름을 한명한명 부를 예정이다.[2002년 8월1일 수정]


뉴욕

면적 약 787㎢. 인구 약 742만(1998). 미국 최대의 도시로서, 1790년 이래 수도로서의 지위는 상실했으나, 미국의 상업 ·금융 ·무역의 중심지로서, 또 공업도시로서 경제적 수도라 하기에 충분한 지위에 있으며, 또 많은 대학 ·연구소 ·박물관 ·극장 ·영화관 등 미국 문화의 중심지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교외를 포함하여 1600만이 넘는 방대한 인구를 수용하는 이 거대도시는 미국 내에서도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는 독특한 도시이다. 국제적으로는 대무역항으로서 대서양 항로의 서단에 위치하는 가장 중요한 항구이며, 1920년대 이후에는 런던을 대신하여 세계 금융의 중심지가 되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미국의 국제적인 지위향상과 더불어 세계 경제에 대한 지배적 지위는 한층 강화되었으며, 1946년 국제연합(UN) 본부가 설치된 후에는 국제정치의 각축장이 되었다.

【위치】 뉴욕주의 남동단, 뉴욕만(灣)으로 흘러드는 허드슨강 어귀 일대에 위치한다. 허드슨강 ·이스트강 ·할렘강 ·뉴욕만 및 롱아일랜드 수로(水路) 등에 의하여 구획된다. 대도시권으로서의 뉴욕은 시역 밖으로 뻗어, 뉴저지 ·코네티컷의 두 주에도 미치고 있다.

【시가】 시는 맨해튼 ·브롱크스 ·브루클린 ·퀸스 및 스태튼섬의 5개구(boroughs)로 이루어져 있다. 맨해튼은 시의 중심부이며, 그 남단에 금융 중심지인 월가(街)가 있다. 월가에서 북동쪽으로 브로드웨이와, 이것과 비스듬히 교차하는 5번가의 두 대로가 시를 종관(縱貫)하고 있다. 브로드웨이의 42번가는 타임스스퀘어로 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이며, 그 남쪽에 펜실베이니아역(驛), 동쪽에 그랜드센트럴역 등 도심의 두 주요역이 있으며, UN 본부도 동쪽 이스트 강가에 있다.

맨해튼섬의 북동부는 흑인 거주지구로 알려진 할렘이며, 여기서부터 할렘강을 사이에 두고 브롱크스구(區)가 된다. 브루클린구는 롱아일랜드의 남단에 위치하는데, 맨해튼섬과는 맨해튼교(橋)와 브루클린교로 연결되어 있다. 브루클린구는 북쪽에 있는 퀸스구와 함께 주택지가 많으나 남부에는 해군공장이 있고, 퀸스구에는 케네디 국제공항이 자리잡고 있다. 스태튼섬은 주로 공장지구와 주택지구로 이루어진다. 스태튼섬과 대안의 브루클린구 사이에는 세계 최장이라는 베라자노내로교(1,298m)가 있다.

【역사】 뉴욕만은 1524년 이탈리아의 G.베라차노가 대서양 항행 중에 발견했다. 1609년 영국의 탐험가 H.허드슨이 뉴욕만에 도달하여 맨해튼섬을 탐험하고, 뒤이어 네덜란드인이 이 섬의 남단부에 이주하였다. 1626년 네덜란드 신대륙 식민지의 초대 총독 F.미누이트가 원주민인 인디언으로부터 맨해튼섬을 매입하여 뉴암스테르담이라 명명하였으며 1653년 2월 이곳의 인구는 약 800명에 달하였다. 1664년 9월 8일 영국함대가 뉴암스테르담을 강제 점령하여, 영국의 왕제(王弟) 요크공(公)의 이름을 따서 뉴욕이라고 개칭하였으며, 1665년 뉴욕의 초대 총독에 니콜스가 임명되었다. 1667년 영국과 네덜란드 사이에 남(南)아메리카 수리남과의 교환이 실현되어 뉴욕 일대는 영국령이 되었으며, 그 후 인구가 늘어나 항만도시로 번영하였다. 1686년 시의 헌장이 제정되었고, 1693년 신문이 발행되었다.

1700년 시청이 건립되어 본격적인 발전기를 맞게 되었으나, 독립전쟁 당시에는 격전지였다. 1783년 독립군에 의하여 재탈환되었으며, 1789년 워싱턴이 초대 대통령 취임선서를 이곳에서 하였다. 1790년 인구는 3만 3,131명이었으며, 이 해까지 미국의 수도였다. 19세기의 100년 동안은 시역의 확대가 계속되었고, 1898년 현재의 시역이 확정되었다. 1850년 69만 7,000명이었던 인구가 1900년에는 343만 7,000명으로 증가되었고, 1920년에는 745만 5,000명에 이르렀다. 20세기에 들어와서는 시역 밖에 많은 위성도시가 생겨 현재는 대도시역 전체에 1,000만이 넘는 대인구가 집중한 세계적인 거대도시로 변하였다. 또 보스턴에서 워싱턴에 이르는, 인구 4,000만이나 되는 미국 메갈로폴리스의 압도적인 중심이 되고 있다.

【산업】 뉴욕시는 미국 최대의 경제활동 중심지로, 특히 맨해튼구의 남부(다운타운)와 중부(미드타운)는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중심으로 알려져 있다. 다운타운의 월가(街) 일대에는 세계 최대의 증권거래소를 비롯하여 은행 ·증권회사 등 금융기관이 집결해 있다. 월가 일대는 도로의 폭이 좁고 수십 층의 초고층 빌딩이 빽빽히 들어서 있어, 대낮에도 어두운 도로가 많다. 현재 다운타운 일각에는 110층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이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102층)을 내려다 보고 있다. 또 하나의 중심지인 미드타운에는 록펠러 센터 ·크라이슬러 빌딩 ·팬아메리칸 빌딩 등 대회사의 본사건물이 집결해 있어, 다운타운 이상으로 초고층 빌딩이 많다. 그 가운데 1931년 완공된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은 약 40년 동안 세계 최고의 건물로 군림하였다. 이와 같이 맨해튼에만도 자본금 100만 달러 이상의 대회사, 전미국의 50대 기업들, 금융기관, 보험회사 등이 본사를 두고 있다. 도매 ·소매업에서도 뉴욕시는 미국에서 첫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5번가와 브로드웨이에는 세계적인 고급상점들이 즐비하다. 그러나 이들 중심상가의 힘은 교외의 쇼핑 센터가 번창함에 따라 상대적으로 중요성이 떨어지고 있다. 이것은 도심부의 교통이 복잡하고, 또 도심 주변이 하급주택지로 변하였기 때문이다. 공업도 매우 중요한 산업인데, 특히 섬유공업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맨해튼의 중부와 남부, 특히 12번가에서 34번가 사이에는 봉제공장이 많이 몰려 있어, 세계 제1의 기성복 제조 도시가 되었다.

이 밖에 인쇄 ·출판 ·식품공업 ·담배가공 ·기계 ·장신구 ·가구제조 등의 공업이 성하다. 일반적으로 보아 뉴욕시에서 발달하고 있는 공업은 공장시설에 그다지 큰 부지를 필요로 하지 않고, 많은 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 많다. 공업생산 총액은 전국 총액의 7%를 차지한다. 또 시역 밖에 있는 위성도시에도 정유 ·섬유 ·화학 등 대소의 공장이 있어 거대한 공업지대를 이루고 있다.

【항만】 뉴욕은 세계 최대의 항만도시이기도 하다. 맨해튼을 중심으로 한 브루클린과 저지시티 일대의 연안에는 뉴욕 뉴저지 항만청(광역적으로 항만 ·항공 행정을 맡아 보는 기관)이 관할하는 대항만이 있어, 수많은 잔교(棧橋)와 창고를 볼 수 있다. 미국 수입총액의 1/2, 수출총액의 약 1/3이 이 항구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뉴욕의 발달은 허드슨강 어귀에 있다는 지리적 이점에서 비롯되었으며, 특히 개척시대에는 허드슨∼이리 운하의 내륙 수운과 대서양의 유럽항로와의 연락처로서 중요하였다. 현재도 서유럽과의 사이에 대형 화물선과 여객선이 왕래하고 있다.

【교통】 뉴욕은 철도교통면에서도 중요한 거점으로, 그랜드센트럴 ·펜실베이니아의 두 역은 장 ·단거리 열차의 대발착장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에는 많은 고가철도가 있었으나, 소음 때문에 거의 철거되었다. 그랜드센트럴 역이나 펜실베이니아 역도 지하에 있으며, 맨해튼 중심지에서 지상 ·고가 철도는 자취를 감추었다. 1904년 처음으로 개통된 지하철은 현재까지 많은 새 노선이 건설되어 지하를 종횡으로 달리고 있으며, 총길이 394km에 이른다. 도로교통에서도 다수의 고속도로(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를 포함)가 집중하고 메갈로폴리스 전역 및 오대호 지방과의 교통도 편리하다. 고속도로는 시내 ·시외에 사방으로 뻗어 있고, 허드슨강과 이스트강에도 여러 개의 고속도로 터널과 교량이 건설되어 있으며, 일반도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그러나 도심부에서는 자동차가 너무 많아 자동차 교통이 불편한데, 그 대신 지하철과 버스 교통이 발달하였다.

또 시카고와 함께 중요한 항공로의 집중지이다. 케네디 국제공항을 비롯하여 라과디아 공항 등 시역 내에도 여러 개의 비행장이 있다. 위성도시에도 뉴어크 ·티테보로 공항을 비롯하여 많은 비행장이 있으나, 그 대부분은 민간 소형기용이다. 케네디 국제공항은 취급 화물량에서 세계 제1을 자랑하며, 금액면에서도 전미국의 항공료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문화 ·관광】 센트럴파크에 있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미국 제1의 미술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다. 공원 서쪽에 있는 자연과학박물관은 이런 종류의 박물관으로서는 세계 최대의 규모를 갖춘 것이며, 헤이든 천문관이 부속되어 있다. 5번가에 있는 록펠러 센터에는 과학공업박물관이 있고, 근처에 20세기의 명작을 소장한 뉴욕근대미술관도 있다. 시 북부의 워싱턴 하이츠에는 인디언 박물관, 미국 지리학협회, 아메리칸 아카데미 등이 몰려 있다. 음악에서는 뉴욕 필하모니 교항악단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브로드웨이와 7번가가 교차하는 타임스 스퀘어에는 수많은 극장과 영화관이 집결해 있어, 미국 제1의 오락중심지를 이루고 있다. 특히 브로드웨이 31번가와 32번가는 95년 10월 ‘한국의 거리(Korea Way)’로 명명되었다. 또 브롱크스구의 브롱크스 공원에는 세계적으로 알려진 동물원과 식물원이 있다.

유명한 대학으로는 브로드웨이에 컬럼비아대학교가 있다. 1754년 창립된 이 대학은 그 연구진과 시설에 있어 미국에서도 일류대학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으며, 세인트존 교회 근처의 허드슨강을 내려다보는 고지에 위치하고 약 70채의 대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뉴욕대학 ·포덤대학은 컬럼비아대학교와 마찬가지로 사립이며, 포덤대학은 가톨릭 계통의 대학이다. 또 뉴욕시립대학이 있는데, 시내에 분산되어 있는 여러 개의 단과대학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밖에 많은 관광객이 모이는 곳으로는 미드타운의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세계 최대의 상업용 건물인 팬아메리칸 빌딩과 UN 본부 건물, 뉴욕 증권거래소 등이 있다. 시의 내외에는 수많은 공원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맨해튼 중앙에 있는 센트럴파크와 브루클린의 남부 대서양 해안에 있는 코니아일랜드가 유명하다. 또 맨해튼 남쪽 바다에는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신상’이 있는 리버티섬(舊 베들로즈섬)과 거버너스섬(연안경비대의 기지로, 사적이 많다)이 있다. 특수한 관광지로는 다운타운 변두리의 차이나타운과 그리니치빌리지가 있다.

【사회문제】 뉴욕시가 안고 있는 도시문제 중에서 가장 심각한 것은 민족 ·인종 문제이다. 주민의 인종구성이 다양한 것은 세계에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1920년대의 뉴욕시에는 더블린보다 많은 아일랜드인이 살았고, 로마보다 많은 이탈리아인이 살고 있었다. 이 도시의 유대인 인구는 한때 이스라엘의 유대인수보다 많았을 정도였고, 혼혈이 많은 푸에르토리코인도 100만이나 살고 있었다. 또 비백인계로는 흑인을 비롯하여 중국인 ·일본인 ·한국인 ·필리핀인, 그리고 소수의 아메리카 인디언도 살고 있다. 이와 같이 뉴욕시는 ‘인종의 도가니’라고 하는 미국에서도 한층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많은 이민이 이곳을 통해 입국하여, 이 도시에서 직업을 얻어 정착하거나, 또는 몇 년 체류하다가 전국 각지로 흩어져 간다. 각 인종이 집단적으로 살고 있는 지구는 말할 것도 없고, 시내 어디서나 강한 외국 사투리가 섞인 회화를 들을 수 있다. 초등학교에서는 이들 이주자의 아이들을 미국화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직업교육을 베푸는 것도 이 도시가 안고 있는 교육면의 중요 과제이다.

또 200만에 가까운 흑인은 대부분이 하층계급에 속하여,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주택문제도 심각한 사회문제의 하나이다. 교외에는 훌륭한 주택지(단독주택 또는 연립주택)가 건설되었으나, 곳에 따라서는 도심지까지 2시간이나 걸리는 데도 있다. 교외거주자는 대부분 가까운 역까지 자동차로 가서, 거기서 철도를 이용하여 도심지로 통근하거나 쇼핑한다. 이들 교외주택지에는 슈퍼마켓이나 백화점을 중심으로 하는 거대한 쇼핑 센터가 건설되어 있다.

그러나 무질서한 택지화도 볼 수 있으며, 물 부족과 통근난이 종종 문제로 대두된다. 오래된 시가지의 건물은 거의 중 ·고층 건물로, 할렘이나 이스트사이드 ·웨스트사이드처럼 빈민굴화된 곳이 많은데, 빈민지구의 재개발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대기오염은 중화학공업이 비교적 적어 방대한 인구에 비해서 그다지 심하지는 않으나, 가끔 스모그 현상을 볼 수 있다. 자동차 ·항공기의 왕래가 많아 소음공해도 중대한 문제가 되고 있다. 강이나 바다의 수질오염은 그다지 심각하지 않다. 시가지가 대부분 단단한 지반 위에 있으므로 지반침하의 문제는 거의 없다.

[2001년 9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