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삶과 아쉬움

 

 

     - 유재영 교수님을 떠나보내면서 -

지난 20년간 우리들 곁에서 자리를 지켜주시던 유재영(柳在榮) 교수께서 광복절인 8월 15일 오늘 새벽에 홀연히 세상을 떠났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최근 4년간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으시고, 병원과 환자 곁을 떠나기 싫어하셨던지라 그 모습에서 우리 강동성심병원 직원들에게는 더욱 깊은 안타까움과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선생님께서는 언제나 한결 같았음을 기억합니다. 겸손하게 세상을 대했고 성실하셨으며, 많은 말보다 진실한 말을 하려 애썼고 인내를 택했던 자상한 분이셨습니다. 당신이 품었던 고뇌와 상처, 희열의 순간을 어찌 감히 모두 헤아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마는 대학교수이자 임상의사로서 품었던 당신의 꿈과 진정한 마음만은 잊지 않을 것입니다.

함께 나누고 싶었던 많은 이야기들은 아직 시작도 못했건만 선생님께 허락된 시간이 무심히도 짧았음이 새삼 슬프고 또 아프게 다가옵니다. 이 아픈 이별 앞에서 무슨 말로 당신을 위로할 수 있으며, 또한 남겨진 우리를 위로할 수 있을 지 알지 못합니다. 다만, 가눌 길 없는 슬픔이 가시는 걸음에 짐이 되어선 안되겠기에 지금은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이곳의 무겁고 아팠던 모든 것을 훌훌 벗어 버리시고 좋았던 기억과 따뜻한 온기와 아름다운 마음만을 품고 가셨으면 합니다.

선생님께서는 35년간 내조하셨던 김홍원 사모님과 사랑스런 승연(34)과 승범(29) 두자녀를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미국 하바드대학 신경생물학교실 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승연 양이 지난 날 미국 베일러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을 때 기뻐하시던 선생님의 모습과 논문집을 자랑스럽게 보여주던 인자한 아버지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또한 8월 14일, 선생님의 병실에서 만났던 승범 군은 지난 6월에 캘리포니아 법과대학 대학원(UC Hasting Law School)을 수료하면서 첫 월급으로 가장 먼저 아버지 은혜에 보답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면서 눈시울을 붉히고 말끝을 잇지 못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961년 명문 경기고를 졸업하시고, 가톨릭의대에서는 의사로서의 꿈을 키웠습니다. 대학원에서는 국내 간염학의 대가이신 정환국 교수의 지도로 아메바성 간농양과 장티브스 간에 대한 논문으로 의학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셨기에 간에 대한 학문적 관심을 갖게되었다고 했습니다. 1969년 고려병원의 인턴생활과 1970년부터 가톨릭의대 성모병원 내과에서 레지던트 생활을 끝냈고, 청평육군병원과 부산통합병원에서 군의관 생활을 거쳤고, 다시 가톨릭의대 성모병원에서 시작한 전문의 생활에서는 전임강사, 조교수 및 부교수로서 가장 왕성한 환자진료와 학술활동으로 많은 동료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습니다.

강동성심병원이 개원한지 4개월후 1987년 3월에 윤덕선 이사장의 부름을 받고 1987년 3월부터는 강동성심병원에서 제2의 의사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무엇보다도 선생님께서는 1984년부터 2년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간염의 분자유전검사법을 익혀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한 숨은 공적을 알만한 분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이러한 학문적 경험을 토대로 강동성심병원에서는 간연구실을 만들어 후학들에게 학술활동의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1997년부터는 4년간 한림의대 내과학교실 주임교수로 보직을 수행하셨고, 1998년부터 2년간은 병원장을 역임하면서 강동성심병원의 발전에도 크게 일조하셨습니다. 병원장 재임기간중에는 국가적인 IMF 사태를 맞았고, 한림대의료원이 평촌에 새로운 병원을 설립하면서 많은 임상스탭진과 유능한 직원들이 옮겨갔던 시기입니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서도 병원 직원들을 독려하면서 새로운 2000년에는 열심히 노력하는 병원 직원상을 심기에 고심 하시던 선생님 모습을 많은 직원들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4년전 가을 불의의 병마로 6개원간 투병생활을 겪으시고도 삶의 의지를 굽히지 않으시던 모습과 직원 한사람 한사람에게 따뜻한 정을 표시해 주시던 그 모습에서 우리들은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랫동안 잊지 못할 선생님의 투병기와 병원장으로서 직원들의 용기를 불러주시던 신년사(2000년)를 아래에 전재합니다. 부디 그 동안 못이루신 꿈들을 깨끗이 후학들에게 물러주시고, 하느님의 보살핌 속에서 부디 평안하고 행복하시길... 두손 모아 간절히 기원합니다. 다시금 유가족에게도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2006년 8월 15일 아침

강동성심병원  조현찬

 

 

   유재영 교수의 투병기

1000여 성심가족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제 6개월 만에 병원을 밝은 마음으로 퇴원하면서 모든 성심가족 여러분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에게 살아서 퇴원할 기회가 주어졌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이고, 작년 10월 30일 인사불성의 상태로 병원에 왔을 때는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었습니다만, 의료진들의 몸을 아끼지 않은 노력으로 중요한 고비를 넘겼고, 아직도 많은 부분을 치료받아야 하지만, 이제는 생명을 위협하는 어려운 문제는 거의 해결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동안, 많은 분들이 격려와 성원을 주셨고, 알게 모르게 전 직원 여러분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무엇보다 혼수상태에서 저를 위해 귀한 혈액을 나누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제가 병원장을 지냈기 때문에 여러분이 저를 도와주신 것이 아니고, 동료이기 때문에 살려보자는 여러분들의 뜻이 통했고, 그것이 결실을 보았습니다. 훗날 많은 분들의 헌혈 사실을 듣고, 저는 외롭지 않고 결코 혼자가 아니며, 1,000 여명의 성심가족이 함께 해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엄청난 용기를 갖게 되었습니다. 삶에 대한 의욕도 강해졌고, 그것이 이후 생사를 넘나드는 수차례 과정에서, 저를 살아남게 해준 원동력이 되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특히 치료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저를 지켜주시고, 적절한 조치를 가해주신 흉부외과 김응중 과장님과 교수님들, 그리고 전공의 선생님들의 노고를 잊을 수 없습니다.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평일이건, 주말이건 저의 상태를 수시로 확인해 주신 두영철 교수님께 감사드리고, 그리고 이비인후과 성형외과 및 내과 선생님들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처음 수술시, 마취를 담당하셨던, 평촌의 문현수 교수님과 심장수술의 담당하신 서울대학교병원 김기봉 교수님께도 이 기회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강동의 성의회 교수님들, 재단의 소화기내과 교수님들 그리고  강동에서 수련을 마친 내과 전문의 선생님들의 물심 양면적인 협조에도 감사드립니다.

선생님들의 따듯한 마음 표시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을 정도입니다. 이제 저와 가족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커다란 은혜를 입었고, 지금부터는 덤으로 사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하루 빨리 후유증에서 회복되어 여러분들을 위해 그리고, 저보다 훨씬 힘들어하는 환자들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열심히 찾아 할 수 있도록 제 남은 인생을 바치겠습니다. 곧 여러분들을 다시 진료실에서 만나기를 고대하겠습니다. 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온 가족에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 빌겠습니다.

                                                              2003년 4월11일

                                                                    내과 유 재영 드림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는 한 해가 되기를

어느 해 보다 다사다난했던 1999년이 끝나고 우리는 새 천년의 문턱에 서 있습니다. 1986년 개원이래 이만큼 큰 변화가 있었던 적은 없었으나 전 직원 여러분께서 정말로 성심 성의껏 병원일에 전념해 주시어 별 다른 어려운 문제없이 1999년을 잘 보내게 되었습니다. 진료뿐만 아니라 많은 직원들이 새로 개원한 한림대학교성심병원으로 이동함으로서 생길 수 있었던 진료 및 제반 병원 업무의 공백을 훌륭히 메울 수 있었던 것은 여러분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평생 직장의 인식이 없이는 불가능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더욱 여러분들의 노력에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현재 우리 의료계는 개혁이라는 엄청난 시련 앞에 서있습니다. 이미 약가 인하, 자보수가 조정 등으로 인한 시련을 겪고 있으며 더욱 새해부터는 기형적 의약분업제도의 시행, 선택진료제도 도입 등 많은 경영의 악재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환자들의 욕구는 더 강해지고 있으며 발생 가능한 의료분쟁도 더 많아 질 것으로 우려됩니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결국 우리 의료인들이 더 많은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더 많은 노력을 해야만 우리는 앞으로 닥칠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새해에는 우리 모두 새로운 마음가짐을 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운 좋게도 한 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세기를 맞는 행운속에 살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새 천년에 대한 가슴 부푼 기대를 하고 있으며 많은 변화가 뒤따를 것으로 예측됩니다.

과학문명의 발달로 인한 의용공학의 발전, 전산 정보 시스템의 발달로 인한 의료통합체계의 확립 등은 의료계에도 엄청나 변화를 주게 될 것이며 일부에서는 장차 전산화의 성공여부가 의료기관의 생존과 직결될 시대가 올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우리자신이 끊임없는 노력을 해야합니다. 다행히 우리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을 이미 확인하였습니다. 본인은 그 동안 우리 직원 여러분들이 보여주신 평생직장의 개념을 그대로 가져주시고 환자를 내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대해 주신다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해도 충분히 이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 새해여러분 모두 건강하시고 여러분의 가정에 행복과 평화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2000년 1월 신년 초하루

                          강동성심병원 병원장 유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