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의전 강의실의 조선인 학생 (1942년)

 

 

   경성의전시절 축구부원으로 활동할 당시(1940)와 동급생들(1941)

 

한림대학교 설립자이산 윤덕선 박사는 1939년에 경성의전에 입학하여 1942년 9월에 졸업하였다. 일본제국주의 시절 그 당시는 태평양전쟁이 확대되면서 군의인력(軍醫人力)이 태부족이어서 의학전문학교 교육을 4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였다. 그러나 학교 수업은 토요일까지 매일 8시간씩 하고 방학도 단축하는 형편이어서 4년간의 수업시간을 다 때웠다. 학생들은 전쟁에 나갈 것을 대비하여 군사교련도 열심이었고, 4년간의 교육이 3년으로 단축되어 수업시간 뿐만 아니라 학습량도 늘어 열심히 해야만 제대로 의학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 당시 먼저 반미(反美) 교육이 시작되면서 중고교의 영어교육이 축소되고 의전에서는 영어 과목이 폐지되었다. 당시 일본은 독일과 동맹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독일어 교육은 치중하였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중고교나 대학에서 영어 교육에 변함이 없이 상당한 비중을 두어 훗일 속의 일본을 심을 준비를 하는 정신 상태였다.

사진의 맨 윗쪽은 1942년 경성의전 병원(소격동 국군수도통합병원 분원 건물) 계단강의실이다. 백색건물인 이 경성의전 부속병원은 경복궁 건너편 삼청동 초입에 청계천을 끼고 서있던 매우 아름다운 2층 건물이었다. 해방 후 국대안이 선포되고 당시 경성제국대학의 후신인 경성대학 의학부와 경성의학전문학교의 후신인 경성의과대학이 합병되어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이 탄생했을 때 제2부속병원으로 사용되었다가 박정희 군사정권인 제3공화국 때 수도통합병원이 된 역사적인 건물이다.

경성의전 조선학생의 반도회 모임의 사진인데 둘째줄 왼쪽에서 4번째가 윤덕선 학생이다. 윤덕선과 같은 경성의전 3학년의 조선인 동기생은 16명, 1943년 졸업생은 13명, 1944년 졸업생 16명, 1945년 졸업생은 20명이었다. 이들 중에는 윤덕선 외 김영진(金榮珍, 전 가톨릭의대 소아과교수), 김희달(金喜達, 전 전남의대병원장), 주인호(朱仁鎬, 전 한림대 객원교수), 김봉서(金鳳瑞, 전 서울대 외과조교수) 등이 동급생이다. 또한 1년 후배로는 안부호(安富浩, 가톨릭의대, 한강성심병원 임상병리과 근무)가 있고, 현재는 모두 작고하셨지만 많은 분들이 공직생활을 거쳤다.

경성의전 후배였던 이용각 전 가톨릭의대 교수(1941년-1945년 재학)께서는 조선인 윤덕선 선배를 다음과 같이 회고하셨다. "부리부리한 누섭, 육척의 후리후리한 키, 그러나 비만기가 전혀 없는 몸체에 가히 처음 마나는 사람을 압도하는 풍김. 이것이 내가 1942년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입학했을 때부터 1996년 이른 봄까지 윤 선생을 만날 때마다 느끼는 인상이었다."  

"1942년 내가 경성의전 초년생 시절, 그 분은 졸업반인 4학년이었다. 경의전 총 학생수의 20%인 조선학생들의 모임인 반도회(半島會) 모임 때 경의전 병원 계단교실에서 윤 선배를 처음 만났다. 소위 대동아 전쟁으로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유리하게 이끌고 있던 군국주의 일본의 서슬이 시퍼런 일본 학생들한테서 유형 무형의 위협을 받고 있던 조선 학생들에게는 선배의 늠름한 체구와 태도에 저으기 위안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윤 선배는 축구부 맹장이라 일본 동급생들이 그 앞에서는 주눅이 들 정도였다."


img1.jpg의학전문지 「메디칼옵저버」지에 전종휘 교수께서 시리즈로 연재하는  "망백의 노의학자가 회고하는 근대 한국의학 뒤안길"이란 기사는 일제시대 한국의학을 재조명하는 명컬럼이다.

첨부되는 사진의 일부는 역사적인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생각에 그 동안 사진설명도 꼼꼼하게 읽어 왔다. 지난 2003년 8월11일자 투고한 컬럼에서는 게재된 사진은 필자가 본과 3-4학년이었던 1970년 중반 2년간 교육받았던 서울의대 계단 강의실과 매우 흡사했고, 윤덕선 박사(한림대 일송학원 전 명예이사장)의 유고집에서도 보았던 낯익은 사진이었다.

사진 설명에는 경성의학전문학교 시절 조선인 학생 모임인 반도회 회원들이 계단교실에 앉아 있으며, 화살표 학생이 1942년 전종휘 교수 필자라는 주석이 첨부되어 있다.

그런데 전종휘 교수는 1935년에 경성의전을 졸업하였고, 1942년에는 중견 의학자로 의술을 베풀고 있던 때인지라 잘못된 설명이라는 점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윤덕선 박사 유고집 "숨은 거인의 길"에서는 1941년도 경성의전 조선인회 사진으로 두 번째줄 왼쪽에서 네 번째가 윤덕선 박사 본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사진이 촬영되었던 연도나 사진 속의 화살표가 전종휘 학생이라는 설명 모두가 오류라는 사실을 쉽게 확인할 수 있는데, 훗날 사진 속의 화살표 학생은 이용각 교수였음을 이용각 교수님의 회고록(甲子生 醫師, 1997)을 통하여 확인하였다. 그래서 메디칼옵저버지 편집국 편집담당자에게 연락했더니 다음 호에 오류에 대한 정정기사를 게재하였다. [2003년 8월 12일]

[참고문헌]

  • 윤덕선 저 『낙엽을 밟으면서』(1991)
  • 일송 윤덕선 박사 추모문집 『주춧돌』(1997)
  • 일송 윤덕선 선생의 글모음 『숨은 거인의 길』(2001)
  •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동창회 『회원명부』
  • 이용각 교수 저 『甲子生 醫師』(19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