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령 괌도 마리아나병원과 윤덕선 박사

 

웹사이트를 검색하던중 우연하게 고 윤덕선 명예이사장의 미국령 괌도 마리아나병원에 대한 이야기를 발견하고 한림대의료원의 역사와 결부된 내용들을 조사하여 보았다. 이 웹사이트에서 괌기념병원의  법의관으로 봉직하셨던 박희영 박사의 "미국에서의 법의관 역할과 항공사고 처리 경험"에서 인용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저는 법의학 분야에 흥미를 가지고 있던 차에 해부병리와 법의 훈련과정을 미국에서 받았고, 수련받은 후에는 미국의 여러 주에서 법의관으로 근무한 경험이 있으며, 고국이 그리워서 국내 의과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을 한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초에는 미국령 괌도로 가서 "괌기념병원 (Guam Memorial Hospital)"의 병리과장을 하면서 괌 정부의 법의관실을 만들어 초대 수석 법의관 (Chief Medical Examiner: CME)을 1994년까지 지냈습니다.

괌 기념병원은 우리나라와 인연이 있는 병원입니다. 세계대전이 끝난 후에 미군이 사용하던 병원을 괌 정부에서 인수를 받아 운영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러가지 재정지원 등 문제로 말미암아 다시 가톨릭 교구에서 이를 맡아 운영키로 합의하고, 이 병원의 운영에 필요한 여러가지 지원을 전세계 가톨릭 교구에게 지원요청을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한림대학교 의료원을 설립하신 (故) 윤덕선 박사께서 흔쾌히 이를 받아들여 성심병원의 의료진을 파견하여 병원운영에 보탬이 되도록 지원하여 오늘날의 이 병원으로 육성 발전하게 된 것을 아시는 분이 그리 많지 않을 줄 압니다. 이것이 아마도 우리나라의 의료기술을 처음으로 해외에 진출 시킨 사례로서 그 대상국이 후진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는 점은 매우 뜻깊은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한 미국령 괌도 한인회의 연혁 부문(http://hafaadaikorea.com/kag_03.html) 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1970년대초기와 중기에 한국인의 괌 진출 급상승으로 한국인의사들이 상당수 이곳에  들어와서 괌메모리얼병원 Guam Memorial Hospital (GMH) 과 마리아나의료원 Mariana Medical Center에 근무했다. 이중에  한사람인 박희영 박사는 GMH의 병리과장으로 1972년 9월에 취임했고, 동시에 괌정부의 수석 법의관으로 1972년부터 1992년까지 만 20년간을 근무했다. 그는 모든 변사체와 원인불명으로  사망한 사람들에 대한 사인과 자살, 타살 감별을 규명하는데 큰 공헌을 했다. 박희영박사는 괌의  초대 수석 법의관으로 1972년에 취임하였다.(법령 11-37호) 즉 사후시체 검안법을 집행에 옮기게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또한 GMH 에 소속되어있던 수석 법의관실을 1977년 1월 분리하여 독립된 국으로 승격시키는데도 공이 컸다.  

한가지 특기할만한 사실은 1976년 가을에 이 곳 Tamuning 에 있는 마리아나의료원 Mariana Medical Center이 서울 한강성심병원 이사장이신 윤덕신 박사가 총공사비 2천만불을 들여 건축하였고 곧 이어 병원을 시작하였다. 이 당시 한국인의사 7명과 약제사, 방사선기사, 간호사, 병리기사, 및 사무직원들이 함께 와서 진료를 시작했다,

그 중에  이비인후과 전문의로 현재까지 괌에서 활약하고 있는 홍래복 박사도 끼여 있었다. 마리아나 의료원은 그 후 약 1년간 진료를 해오다가 한국으로부터의 간호사 채용문제를 위시하여 괌 정부로부터 많은 제재를 받아 오던 끝에 경영난에 빠져 결국 괌 정부로 넘어갔다. 그 당시 괌메모리얼 병원은 낡은 건물인데다 새 병원인 마리아나 의료원과 경쟁하기 어려운 입장에 놓여있었다. 그래서 유일한 사립병원을 폐쇄한 것은 참으로 안타깝고 잘못된 처사였다고 생각된다. 괌정부로서는 경쟁이 두려워서 사립병원을 없앴는데 이 보다 자기네들의 병원인 GMH의 질적향샹에 주력했어야 한다.

마리아나 병원 전경

마리아나병원 개원 기념식 후 윤덕선 이사장과 마페 신부

 

미국령 괌도 마라아나병원 운영권 인수 배경

미국령 괌도는 남태평양의 파라다이스 원주민 Chamorro족이 약 30먄(80%), 미국인(10%), 기타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들이 살고 있고 종교는 주민의 90%가 가톨릭신자였다. 의료기관으로는 정부가 경영하는 150병상 규모의 괌메모리얼병원(GMH)이 하나 있었는데, 경영 미숙과 태풍 피해 등으로 문을 닫고 노인병수용소로 전락되었던 때였다.

그래서 1973년 미국령 괌도의 천주교 아가나 교구의  플로레스(Flores) 주교가 주동이 되어 정부와는 관계없이 주민들과 합심하여 주민들의 의료보건 문제를 해결하고자 종합병원인 200 병상 규모의 마리아나 의료원(Medical Center of the Maranas, MCM)을 설립하기로 하였다.

그 후 Flores 주교는 교구의 모든 자금을 동원하여 병원건물을 건축이었는데 본 성심의료재단 이사인 Edward J. Moffett 신부를 통하여 1976년 1월 모든 운영권을 위임한다는 조건으로 용역사업을 요청한 바 동년 2월 괌도에서 일차 회담을 갖고 모든 운영권을 위임받기로 잠정 합의하였다.

그 동안 건축에 투자한 Aetna 보험회사가 용역회사와의 불신관계로 더 이상 건축자금 제공을 거부하여 왔으나, 본 성심의료재단이 운영을 맡게 되면서 건축자금을 계속 지원할 것이라는 San Francisco 회담이 있었다.

본 재단에서는 76년 2월 23일 보건사회부장관의 사업 추천을 받았고, 2월 25일에는 노동청장의 인력 송출 허가를 얻었다. 또한 한국은행 총재의 해외투자에 관련 사항에 대한 허가를 얻어서, 1976년 4월 23일 정식으로 용역 체결을 하고 중단되었던 건축공사를 재개하였다.

마리아나병원의 운영용역 계약 내용

서문(序文): 괌도 소재 비영리법인 Medical Center of the Maranas (MCM)는 한국의 의료법인 성심중앙유지재단(Sungshim Hospital Foundation, SHF)에게 한국의 우수한 전문적 병원관리와 전문의료기술을 도입하여 MCM을 운영할 것을 다음과 같이 약정한다.

 

(1) MCM 이사회는 병원재산에 대한 권리 및 관리권을 가진다

(2) 병원운영을 위한 장비구입과 운영자금을 위하여 SHF는 220만불의 보증신용장을 개설하여 운영능력을 표시한다.

(3) 병원운영에 필요한 물자는 가능한한 한국에서 구입한다.

(4) SHF는 MCM의 제반 회계, 예금, 지출에 대한 지시감독을 한다.

(5) SHF는 MCM을 대신하여 모든 대외관계, 계약, 보수, 보험 등 자산 관련사항에 대한 조정, 계약, 감독을 행하고

(6) MCM의 모든 직원의 급여 및 임면에 대한 권한을 SHF가 가진다.

(7) 창업에 따른 모든 비용은 MCM이 SHF에 상환한다.

(8) 개원 후 5년간은 자체상환금을 상환하고 5년후 부터는 수익의 40%는 SHF의 용역대가로 지급한다.

(9) 본 계약기간은 10년간이며 별 이의가 없으면 자동연장된다.

MCM 이사회의 구성내용

 

 마리아나병원 외관 모습

 

 

마리아나 병원 내부 모습들

괌도의 천주교 아가나 교구장인 Flores 주교가 설립한 재단의 이사회는 현지인들로 구성되어 있었으나 운영용역 조건으로 현지인 5명과 본 재단 대표 5명으로 이사회를 재구성하였다. 또한 모든 결정사항이 부의되는 회의에는 본 성심의료재단의 대표권자로 위임된 Edward J.Moffett 신부를 참석하여 이사의 권한을 행사하여 왔다.

개원 준비 단계

1976년 4월 23일 정식 용역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이행 조건의 하나인 220만불의 보증신용장을 개설하여, 본 재단측의 의무사항을 실행하였다. 따라서 그 동안 중단되었단 700만불의 공사자금(Aetna 보험)이 제공되어 건축을 계속할 수 있었고 의료기자재의 일부는 본 재단이 개설한 신용장을 담보로 현지금융으로 구입하였다.

인력송출

본 재단에서는 MCM이 정상 운영이 될 때에는 310여명의 직원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하고, 필요 인원의 반을 한국인으로 충당할 계획을 세웠다. 1978년도까지 150여명의 한국 의료진 및 기술자들을 송출할 계획이었으나 1976년 말 미국 이민법의 개정으로 한국에서의 의사, 간호원, 약사 등이 미국내 취업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까라서 당초 인력송출 계획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하여 사실상 인력송출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으며, 소수 인력만 송출하여 병원운영을 꾸려가야 했다.

(1) 취업비자 취득 송출인원: 의료기사 9명, 일반기술자 23명, 행정요원 4명

(2) 일반비자 송출인원 : 의사(유자격) 8명, 간호원(유자격) 3명, 약사 2명

개원과 운영

병원건축을 완료와 함께 1976년 12월 5일 Dedication Ceremony를 거행하고, 1977년 1월 31일 병원 개원을 하게 되었다. 계획상으로는 1976년 7월경에 개원 예정이었으나, 태풍으로 인한 피해와 건축자재 조달 지연 등 부득이한 사정으로 개원이 지연되었다. 소수의 한국인과 현지인으로 구성된 직원들로 총규모 148병상의 현대식 병원을 개원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 개원식에 아래 국내 주요 인사들과 5천여명의 손님이 참석하였다. Flores 주교의 집전으로 거행 벽두에 국내 참석인사들은 오너게스트(honor guest)로 호명어 기립 박수로 환영을 받았다.

미사진행에서 특이한 광경은 반주가 피아노나 올갠이 아니고 브라스밴드에다 가끔 축복하는 대목에서 "PEACE"하면서 전후좌우와 악수하는 모습, 그리고 나폴레옹 모자를 쓰고 사벨을 허리에 찬 해군 정장의 사람들이 단하에 늘어선 모습이었다. 개원식이 끝난 후에는 성대한 파티가 그 자리에서 뷔페 형식으로 진행되어 어린이들까지 모여들어 약 6천명의 하객들이 먹고 마시고 음악에 맞추어 춤추고 노래하였다는 참석자들의 회고담이다

  • 윤덕선(尹德善) 이사장
  • 마페(Moffet) 신부 (성심자선병원장 역임)
  • 한격부(韓格富) 대한의학협회 회장
  • 방창덕(方昌德) 한강성심병원장
  • 김수명(金洙命) 박사(춘천전문대학장 역임)
  • 송호성(宋浩星) 대한병원협회 회장 (한강성심병원장 역임)
  • 이하영(李夏榮) 소화병원장
  • 김병훈(金秉勳) 박사
  • 김관철(金寬撤) 국제라이온스협회 총재 

그 동안 환자진료 실적이 1년도 되기 전에 70%라는 높은 수용률을 내게 되었으나, 막대한 차관자금에 대한 이자와 초창기 운영자금 도입 관계로 수지상으로는 순이익을 내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건실한 발전의 여건이 조성되어 개원 2년후인 1978년에는 정상 궤도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다.당시 우리 의료원의 의사로는 이광학(내과, 전 한림대의료원장), 최창식(외과, 전 한강성심병원장) 등이 참여하셨다.

용역사업 종료

아가나의 Flores 주교는 교구의 막대한 부채를 안고 있었고, 병원 운영주체를 본 재단으로 교체하였으며, 또한 태풍에 의한 제반계획 차질 및 교회 신도들의 약속된 기부금 불이행 등으로 융자금 상환이 2년 이상이나 지연시켰다. 이러한 관계로 GUAM 정부에서는 교회 채무를 해결하게 됨에 따라 본 재단으로서는 MCM 운영을 끝내게 되었고, 투자회수는 2년 이상 걸려 해결되었다.

[2006-3-15 한림대의료원 부의료원장 조현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