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앓는 대학병원] 교수들 "차라리 개원"

의과대학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연구.진료. 그러나 의약분업 실시 이후 대학병원 의사들이 '진료 영업현장' 으로 내몰리면서 대학 본연의 기능도 흔들리고 있다. 10년째 H대 교수로 근무하는 K씨. "말이 좋아 교수지, 하루 종일 환자 진료에 시달리고 학생.수련의.전공의 교육에 보호자 교육까지 하다보면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연구는 고사하고 책을 볼 시간도 없다" 고 말한다. 또 다른 대학병원의 P씨. 그는 "의대 교수는 병원 수입을 올리기 위해 고용된 의사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고 털어놓는다. 병원에선 매일 과별 진료실적을 공고하고 진료과장 회의는 수입을 독려하는 게 주된 주제라는 것.

교수의 본분인 연구도 뒷전이다. 환자 진료에 치여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다. 전공의들도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생각 때문에 교수를 따르지 않는 새로운 풍속조차 생겨나고 있다. 많은 의대 교수들은 교수로서의 보람.명예.자율성이 이미 사라졌다고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능하면 하루라도 빨리 나가자' 는 생각이 교수사회에 팽배해 있다. C대학병원 피부과는 올해에만 7명의 교수가 개원했을 정도. 이 중 한사람인 L씨는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있어 대학교수를 택했다. 하지만 피부병 환자만 몰리는 대학병원 특성상 수입을 못 올리다 보니 지난 한해 동안 진료실을 병원 후미진 곳으로 세번이나 옮겨야 했다" 고 말했다.

미래의 의사 교육도 문제다. 일반외과.소아과.산부인과 등 필수진료과 기피는 이미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우수한 의대생들이 지원했던 내과조차 의약분업 이후 기피과로 변해가고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과 윤용수 과장은 "환자가 미어터진다는 서울대 어린이병원도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다보니 지난 한해 50억원의 적자를 봤다" 며 "필수진료과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고 강조했다.

[2001.5.14. 중앙일보  황세희 기자]


의대교수 ‘혈통주의’에 꽉 막혔다

국내 의과대학 교수들의 ‘혈통주의’가 다른 분야의 학문보다 유독 심각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특정 의대 출신들이 한 대학의 교수직을 대부분 차지하거나, 모교 출신 우대 풍토가 팽배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초의학 분야에서조차 자연과학 등 인접 학문과의 교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같은 사실은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윤성 교수가 최근 ‘한국 의과대학 교육현황’ 자료를 토대로 전국 41개 의과대학의 교수별 출신학교를 조사한 결과 나타났다.

◇실태=전국 41개 의과대학 중 특정 대학 출신 의과대학 교수 비율이 90%를 넘는 의대가 7곳, 80% 이상이 4곳 등 모두 27개 의과대학에서 특정 대학 출신 비율이 50%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교수를 배출하지 못한 17개 신생 의대를 제외한 24개 대학만 집계할 경우 절반 이상의 의과대학에서 특정 대학 출신 비율이 70%를 넘어서고 있다.  또 전국 의대 교수 6,798명 중 자신의 모교에서 근무하는 사람은 2,982명으로 47.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1965년 이전에 설립된 8개 주요 의과대학은 모교출신 비율이 91.1%에 이르고 있다. 또한 전체 의대교수 중 비의과대학 출신의 비율은 6.6%에 그쳐 의대의 기초학문이라 할 수 있는 자연과학이나 인접학문인 공학·철학·법학 등과의 교류가 외국에 비해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작용=이러한 혈통주의는 교수 채용은 물론이고 인턴·레지던트 등 병원 수련의 선발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이는 의료인들간 불필요한 파벌 형성은 물론이고 국내 의료계에서 학문적 상호비판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교수들의 혈통주의가 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ㅅ병원의 ㄱ교수는 최근 세계적 권위지에 논문을 발표했으나 언론과의 인터뷰를 극구 사양했다. 이유는 병원내 다수를 차지한 특정대학 출신이 아니어서 자신이 언론에 부각되면 여러가지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ㅇ병원의 한 산부인과 교수는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이 세계적 추세인데도 원로교수가 외과적 수술방법만을 고집해 신기술 도입은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고 털어놨다.

혈통주의로 학자간 비판정신의 실종은 의학발전의 저해는 물론이고 국민들에게도 그 폐해가 그대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포경수술이다. 종교적 이유로 포경을 권하는 이슬람 국가에서조차 20% 정도에 불과하지만 국내에선 90%를 넘고 있다. 최근에 와서야 자연과학자와 한 의대 교수에 의해 ‘비인권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비록 다른 대학에 적을 두고 있어도 자신의 스승과 선배라는 이유로 잘못을 비판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고 꼬집었다.

◇대안=연세대의대 내과 허갑범 교수(의학전문대학원 추진위원장)는 “의대내 심각한 혈통주의는 다양화·다원화시대에는 뒤처질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고 지적했다. 허교수는 또 “의학계는 아직도 엘리트 주의나 학벌위주 사고가 팽배한 것이 사실”이라면서 “교수채용은 물론이고 병원 수련의 모집 등에서도 타대학 출신을 받지 않으려는 경향이 역력하다”고 비판했다. 허교수는 “의학은 응용학문인 만큼 자연과학은 물론이고 심리학·법학·철학·문학 등 다양한 인접 학문과 결합될 때 우수한 학문적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모교출신 비율을 법적으로 강제하는 것도 단기적인 효과를 얻을 수는 있지만, 복수전공이나 학사편입·의학전문대학원 등을 통해 의대생의 다양성부터 확보해야 교수사회의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향신문 강용혁기자, 2001.7.22>


전문의 개업 러시로 수련의들 전전긍긍

안과 레지던트 2년차인 A씨(34)는 3월 초 6개월 동안의 정신적 방황 끝에 수련 받는 병원을 옮겨 교육도 받고 진료도 할 수 있게 됐다. A씨는 지난해 서울의 한 병원 안과 레지던트로 선발된 뒤 수련을 받다가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의 2명이 모두 개원해 나가는 바람에 더 이상 이 병원에 머무를 수가 없었던 것.

현행법상 병원이 레지던트나 인턴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의 전문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지 못한 이 병원은 결국 데리고 있던 수련의를 방출해야 했다. 이처럼 종합병원 전문의들이 너도나도 개원하면서 수련의들이 교육받을 병원이 사라져 의사수급체계에 비상이 걸렸다. 특히 성형외과, 이비인후과, 안과 등 의료보험 제외 과일수록 이런 현상이 심해 일부 종합병원은 이런 과들을 없애기도 하는 실정이다.

▶실태 : 올 초 서울 강남 B병원 안과의 경우 전문의 9명 가운데 5명이 무더기로 빠져나가 개원했다. 또 경기도의 C병원과 D병원은 성형외과 전문의가 모두 빠져나가 성형외과가 아예 없어졌다. 일부 다른 종합병원에서도 안과 등 소규모 과들이 사라지고 있다. 2002년 현재 수련의 지정병원은 전국적으로 246곳. 이 가운데 수련의 지정병원으로 지정됐다가 전문의의 개원 등으로 수련의들이 분산 배치된 경우는 2001년 83명으로 2000년 37명에 비해 배 이상 늘었다.

▶원인과 문제점 :수련의들이 수련 받을 병원이 점차 줄어들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교육을 담당하는 종합병원의 전문의들이 처우에 대한 불만과 고수익을 위해 개원하면서 병원을 떠나기 때문이다. 한 종합병원에서 성형외과 전문의를 하다 개원을 한 김모씨(44)는 “돈 문제도 있지만 종합병원에서 규모가 작은 과 의사들에 대한 차별적인 대우에 자존심이 상하거나 상대적 박탈감 때문에 전문의들이 종합병원을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책 : 가톨릭 성모병원은 모병원과 각 지역의 자병원들을 연계해 전문의 결원으로 수련의의 병원 이동이 불가피할 경우 자동적으로 이동수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런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수련의들의 이동이 잦거나 전문의 결원이 자주 발생하는 병원에 대해서는 지정병원 취소나 지정신청 거부 등 특별관리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2년 3월 4일 동아일보 ]


중소병원들 "의사 急求"…의약분업이후 3명중 1명 사표

2000년 8월 의약분업이 실시된 이후 중소병원에서 상당수 의사들이 상대적으로 수입이 늘어난 개원의 등으로 빠져나가 중소병원의 의료 공백이 심각한 실정인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협회에 따르면 전국에 있는 400병상 미만의 중소병원 144곳을 대상으로 ‘의사 이직실태 조사’를 한 결과 지난해 1∼10월에만 전체 정원(1525명)의 34%에 이르는 519명이 동네의원 개업 등을 이유로 퇴직했다.

진료과목별 퇴직률은 성형외과가 61.9%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으로 △소아과 47.2% △신경외과 37.4% △방사선과 37.3% △내과 37.2%△마취과 35.0% △신경 및 응급의학과 34.6% △산부인과 33.6% 등의 순이었다. 특히 퇴직률 상위 10위 내에 내과와 신경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기본 진료과목이 대부분 포함됐으며 이들 진료과목은 미충원률이 △내과 35.2% △신경외과 35.5% △산부인과 24.5% △소아과 43.4% 등이었다.

전남의 Y종합병원은 전문의 15명 가운데 원장과 부원장을 제외한 13명이 사표를 제출했고 의사 모집공고를 낸 한달 동안 문의전화가 1건밖에 없었으며 국내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서울 K병원 안과도 현재 정년퇴직을 앞둔 의사 1명만 남아 있다는 것. 병원협회는 의사 구인난 속에서 중소병원의 경영난도 크게 악화돼 1월 말 현재 전국의 병원 264곳에서 총 9670억원의 요양급여비가 제약회사와 병원시설 납품업체 등에 의해 가압류돼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이 같은 가압류 급여비 규모는 전체 중소규모 병원이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하는 월평균 요양급여비(3208억원)의 3배가 넘는 것이다.

병협 관계자는 “의사 결원이 생기면 월급을 50% 가까이 올려준다고 해도 후임자를 구하기 어렵다”며 “특단의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 한 상당수 중소병원들은 머지 않아 제 기능을 수행하기 어려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2002년 3월2일자 동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