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凡속에서 나를 構築

 

 

오늘도 역시 분주한 하루였다. 출근과 함께 미생물 검사실에서 혈액검사실로 그리고 동물실험실로 오르내리다가 하루해를 보냈다. 같은 길을 걷는 수많은 동료의사 즉, 전공의중 나처럼 바쁘지 않고 피곤하지도 힘들지 않는 사람이 있으리요마는 지난 수개월은 무척이나 힘든 나날이었다.

의사라는 직업이 이렇게 힘든 줄 알면서도 직업자체를 포기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는 의과대학 6년의 공부가 아까운 것이 아니고, 장차 돈을 많이 벌기 위한 것도 아니다. 굳이 이유라면 약 10년동안 의사로서의 직업의식을 키워왔고. 그 속에서 이미 삶의 터전이 약간씩 굳어져 가고 있다고나 할까.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애당초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의사가 되고 싶어서 이 길을 걷게 된 것은 아니었는데 이제야 의사로서의 설계, 꿈을 펼쳐본다면 그 자체가 어쩐지 부끄러움이 될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의사라는 나의 직업신분이 삶의 목적이나 생활신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하다는 사실을 자랑하지는 못할지라도 부끄러워할 것도 못 된다. 나는 범부 노릇을 잘 못할까 두려워할 뿐, 범부된 사실에는 전혀 불만이 없다. 내가 범부임을 만족하게 생각하는 것은 나와 같은 범인이 수없이 많기 때문이요, 이 세상을 움직여가는 힘이 주로 범인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다. 나는 이러한 평범한 사람들 속에서 나를 구축하려 함이 첫 번째 생활신조이다. 평범한 삶에서 맡은 바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곳이면 언제 어디에서나 충실하리라는 것이 두 번째 신조이다. 세번째로는 무엇보다도 물질적인 보상을 주된 요인으로 생활지표로 삼지 않으리라.

이 세상의 수많은 조직 속에서 의사라는 집단구성원으로 부끄러움, 또는 실망을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여러 주위사람들은 세인들이 생각하는 진로와 동떨어진 일을 하고 있는 나를 보고 다소 의아해 하는 눈치들이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내과냐 외과냐는 선택적인 물음이 나올 때 임상병리과라고 대답하면 그런 과해서 무슨 돈을 벌겠냐는 것이다.어느 누구는 어디에서 돈벌어 큰 빌딩을 샀다느니 자가용이 어떠하다느니 등등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어왔다. 이런 이야기를 『아 그러세요』하고 지나쳐버리고 내가 걷는 진로에 자부심을 가지려는 것은 오직 나의 길을 당당히 가려는 소박한 마음 때문일까. 의사로서의 권위를 찾으려하고 노력한다고해서 되는 것은 아닐게다. 그러한 권위는 매우 높은 수준의 물질적 생활의 향유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닐게다.

오히려 지나치게 호사스런 생활은 그의 권위를 손상시킬 뿐이라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이야기가 될게다. 나보다 높은 자리의 있거나 많은 업적을 성취한다고 해서 남을 부러워할 것도 시기할 것도 없다. 나의 임무를 성취하였다면 무엇을 또 바랄 것인가. 나의 경쟁 상대자는 남이 아니라 바로 나자신이기 때문이다. 즉 나의 가능성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끌었느냐 하는 것이 나의 목표이기 때문이다. 나 자신을 남과 비교하려고만 할 때 남만큼 성공을 못하거나 남과 같이 잘 살지 못한다고 생각할 때 불만이 나오고, 남이 업적을 인정하여 주지 않는다고 할 때 서운한 그런 감정은 가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주어진 한도 안에서 최선을 다하였을 때 성공자가 될 것이다.

예과시절 노교수의 말씀이 떠오른다. 『그날그날 자기의 일을 충실이 해나가는 사람에게는 저절로 길이 열린다. 오늘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오늘의 과제이다. 그것은 앞날을 기약하는 한알의 씨앗이다』라고. 오늘도 내일도 주어진 책무에 충실하련다. 주어진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하여 긍지를 가지고 나의 길을 가는 나의 모습에서 나는 위대한 범인임을 자부하리라. 물론 위와 같은 상념의 노력은 언제나 한 시작에 불과하며 또한 이것은 결코 완결될 수 있는 성질의 것만은 아닐게다. 이것은 아마도 끊임없이 되풀이되어야 할 연속의 과정일 것이다.

[1981년 8월17일  의사신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