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사라호에 대한 기억

  

 

작년 가을 전국 곳곳을 휩쓸고 남기고 간 태풍 루사의 상처가 참혹하다는 이야기를 언급했던 바, 동해안 강릉의 경우 도시가 폐허로 변했고 마을 전체가 사라진 곳도 있으며, 엄청난 인명 피해는 물론이고 수만명의 수재민이 악몽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2003년 9월 올해도 어김없이 남해안에 태풍 매미호가 상륙하면서 엄청난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초래하였다.

언론매체를 통해서 태풍과 홍수 피해가 보도되고, 강한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에 항상 떠오르는 기억은 1959년 9월17일 남해안의 중심부인 경남 남해섬을 강타했던 사라호 태풍이다.

 사라호 태풍이 몰아치던 날

당시 나는 경남 남해섬의 한 어촌마을에서 국민학교 2학년의 8살이었다. 사라호 태풍이 몰아치던 날은 우리나라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었는데, 추석 전날은 그런대로 명절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그러나 저녁부터 쏟아지던 폭우는 온식구들을 뜬눈으로 밤을 세우게 했고, 추석날 아침에는 폭우가 더욱 세차게 몰아치면서 폭풍우로 변하였다. 또한 바닷가에선 밀물 때의 만조와 겹쳐 해일이 온마을을 엄습하였다. 그러나 어린 나는 아무 영문도 모른 채 어른들이 장대비 맞으면서 대문밖을 들락거리는 모습을 조그마한 벽창너머로 숨죽여 지켜만 보았다. 어른들이 부지런히 움직였던 이유는 폭풍우를 동반한 해일이 마을 아랫쪽을 덮치면서 가옥들을 돌보고, 마을뒷산 고지대 쪽으로 몸을 피하는 마을주민들도 도와주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폭우가 계속되면서 앞마당과 집주위가 물바다와 개천으로 변해도 어른들이 보호한다는 막연한 생각에 어린 형제들은 별로 겁먹지는 않았다는 기억이다. 또한 내가 살았던 집은 해안으로 내려가는 도로를 따라 이어진 여섯가구중 가장 위쪽에 있었던지라 다행히 해일에 의한 바닷물 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새벽부터 엄습한 폭풍우로 창고가옥이 무너지고, 할아버지께서 수십년 동안 정성들여 키워왔던 과일나무들은 모조리 꺽어지고 쓰러지는 피해를 당했다.

 해안가의 집체들은 사라져버리고

태풍이 지나간 오후 늦은 시간에는 언제 비바람이 있었냐는 듯이 맑게갠 하늘을 볼 수 있었고, 비로소 바깥 나들이가 자유스러워졌다. 대문을 나서서 왼쪽 동구 밖으로 바라다보이는 마을은 그야말로 처참한 모습 그대로였다. 해안둑은그 동안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는 구실을 해왔는데 힘없이 무너져내려 마을을 끼고도는 모든 농경지는 바다로 변해 버렸고 해안가의 집체들은 사라져버렸다.  동네 아이들과 같이 평소 물장난하던 조그만 개울과 바닷가로 통하는 길도 물론 없어져 버렸다. 각종 부서진 가구며 죽은 가축들의 시체가 파도를 따라서 해변가로 밀려왔다. 마을포구에 한가롭게 떠있던 배들은 산쪽 들판으로 밀려가서 는 부서지고 형체도 알 수 없는 배들도 많았다.

이런 난리중에도 아버님께서는 추석 다음날 조상 성묘를 빼놓지 않으셨고, 우리 형제는 학교가 임시휴교인 줄도 모르고 등교를 하였다. 학교까지는 10리길, 2개 마을을 거쳐야 하는데 마을로 이어지는 다리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멀리 떨어진 큰 길을 돌아 읍내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후 크고작은 태풍은 해마다 반복되었다는 기억이고, 큰 폭우가 있게되면 읍내로 통하는 나무다리가 사라지곤 했다. 그러나 사라호 같이 해일을 동반하여 바닷가 마을집들을 덮쳐 버린 경우는 없었기 때문에 당시 사라호가 얼마나 강한 태풍인지는 참혹했던 당시의 기억은 해마다 반복되는 태풍소식을 통해 더욱 또렷하게 뇌리 속에 각인하게 된다.  

 남은 것이라곤 흙탕물 웅덩이와 진흙뿐

사라호 태풍이 지나간 뒤의 참상에 대한 당시의 한 언론보도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었다. "......17일 태풍 사라 호가 휩쓸고 지나간 낙동강 유역 700리에 남은 것이라곤 흙탕물 웅덩이와 진흙뿐이었다. 해방 후 최대의 풍년이라던 영남의 곡창지대는 삽시간에 불모의 벌판으로 화해버린 것이다......"  

성난 파도가 괴성을 지르며 해안을 뒤덮고 세찬 바람은 날카로운 굉음을 내며 모든 집들과 건물들을 날려버렸다. 알알이 익어 산들거리는 가을바람에 춤추던 벼들도 진흙탕으로 변한 논바닥에 맥없이 쓰러진 채 검은 시신으로 넘쳐났다.

1959년 9월 15일 서태평양 북(北)마리아나제도 남부의 사이판 섬 해역에서 발생하여 일본 오키나와[沖繩]를 거쳐 9월 17일 새벽 한반도에 도착, 남해안을 거쳐 통영,대구,영천,영덕,청송,안동,경산,청도,달성 등 경상남북도 지역에 막대한 해를 입히고 이튿날 동해로 빠져나간 태풍 사라(Sarah)가 남긴 흔적은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참혹한 현장이었다.

최대 풍속 초속 85m/sec, 평균 풍속 초속 45m/sec, 최저 기압 952hPa(헥토파스칼)을 기록하며 1904년 한반도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현재까지도 가장 큰 태풍으로 기록되고 있는 태풍 사라(Sarah)는 초(超)강풍에 폭우까지 겹쳐 해안 지역에서는 강력한 해일이 일어나고, 내륙 지역에서는 역류한 강물이 넘쳐나며 남부지방 전역의 가옥과 농경지를 삼켰다.

도로가 곳곳에서 유실되고 교량이 파손되었음은 물론, 전국적으로 사망 781명, 부상 3,001명, 실종 206명으로 총 37만 3천4백59명의 이재민이 발생했었다. 또한 선박 11,704척과 물론 많은 농경지도 피해를 입었다. 이로 인한 재산 피해는 당시 화폐 단위로 약 1662억원(4천 5백만 달러)이라고 했다. 태풍 사라호가 우리나라 기상예보를 시작한 후 최강의 태풍이었다는 사실은 중심 최대풍속이 초속 85미터였고, 평균 초속이 45m의 강풍이었다는 점에서 알 수 있겠다.

 43년이 지난 후 오늘은...

 

611.jpg필자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남해섬 섬호마을의 해변가. 소나무숲 아래쪽은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지는 밭이 있었는데 사라호 태풍으로 쓸려나갔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지만 해마다 계속되는 태풍으로 이젠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왼쪽에는 마을을 보호하는 방파제와 해안 둑방길로 1959년 사라호 태풍에 이어 2003년 매미호의 태풍에서 해일로 바닷물이 넘쳐 마을을 휩쓸고 지나갔다.

40년전에는 이 해변에 모래와 부드러운 자갈도 많아 여름철에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수영을 즐겼는데, 그 후 양식장(굴밭)으로 개발되면서 해수욕은 불가능해졌다. 해안가에서 뒹구는 큰 바윗돌들은 농경지를 보호하는 방패막이었는데 지금은 흩어져내려 43년전 당시의 모습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한다.

[2003년 9월19일 수정, 조현찬] 


남해섬 고향마을을 또다시 강타한 "매미"호

 

12일 오후 경남 남해섬을 거쳐 사천으로 상륙해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많은 피해를 남기고 간 태풍 '매미' 는 역대 최고에 오를 만한 각종 태풍기록을 양산했다. 중심기압과 풍속, 강도 등 태풍의 위력을 가늠할 수 있는 부문에서 '극값' 경신이라는 최고 기록을 남긴 것이다. 기상청은 이번 태풍 `매미'는 그동안 남해안을 통해 한반도를 강타했던 역대 태풍 가운데 지난 59년 9월 중순에 찾아온 태풍 `사라(SARAH)'와 모든 면에서 비슷한 규모로 보고 있다. 단지 크기에서만 '매미'가 중형급(초속 15m의 풍속이 미치는 반경이 300㎞이상∼500㎞미만)으로 '사라'보다 한 수 아래지만 강도나 중심기압, 풍속 면에서는 비슷한 면을 많이 지녔다.

◇ "사라" 이후 최대 강도

태풍의 위력을 측정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치인최저기압으로 보면 '매미'는 지난 59년 9월15일부터 4일간 한반도를 강타한 태풍 '사라'를 제치고 1위를 기록했다. 당시 사라는 남해안으로 상륙해 부산을 강타하면서 최저기압이 952h㎩을 기록했는데 '매미'는 통영에서 측정된 최저기압이 954.0hPa로 지난해 '루사'가 남겼던 2위기록 970hpa과 사라의 1위 기록 모두를 한 순간에 제쳤다.

'매미'는 태풍이 내륙에 첫 상륙할 때인 12일 오후 7시51분 여수에서 956.5hPa을 기록한 것을 비롯해 오후 8시 50분 통영에서는 954.0hPa, 오후 9시37분 마산에서는 959hpa를 기록했다. '매미'는 내륙에 상륙한 뒤에도 950hpa대의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한반도를 관통해 더욱 많은 피해를 남겼다.

◇역대 최대순간풍속 기록

태풍 '매미'는 12일 제주도를 강타하면서 역대 최저기압을 이용해 최대순간풍속 최고치마저도 경신했다. 태풍 `매미'는 이날 오후 4시10분 북제주군 한경면 고산 수월봉 기상대에 설치된 풍속계에서 초속 60.0m를 기록했다. 제주도 고산에서 기록된 최대순간풍속은 지난 2000년 8월31일 태풍 `프라피룬'이 흑산도에서 기록한 전국 최대순간풍속이었던 초속 58.3m를 뛰어넘은 것으로 1904년 우리나라 기상관측이래 최대순간풍속 최고치이다. 또 지난 1923년 제주지방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강한 바람이었던 `루사'가 지난 2002년 8월31일 기록한 56.7m보다 강했다.

태풍 `매미'의 크기는 '중형'이지만 내륙에서도 중심기압을 950hPa로 유지했고이로인해 한반도 상공에 있던 대륙고기압과의 큰 기압차로 강한 바람을 계속 불어댔던 것이다. 바람은 초속 15m만 돼도 거리의 간판이 날아가고 행인이 제대로 걷기가 어려울정도이며, 초속 50m가 넘으면 사람은 물론 거리의 가로수가 뿌리째 뽑혀 날아가고철제 송전탑이 엿가락처럼 휘는 엄청난 위력이다.

◇엄청난 피해 규모의 재산 피해

이처럼 엄청난 위력으로 인해 태풍 '매미'는 막대한 인명과 재산상의 피해를 남길 것으로 전망된다. 태풍 '매미'의 위력과 경로가 그동안 많은 피해를 남겼던 역대 태풍들과 유사한데다 특히 올 여름 계속됐던 잦은 비로 인해 강수량이 많은 상황에서 많은 비까지내렸기 때문이다. 한편 지난 11일 제주도와 남해안지방이 태풍전면에 들면서 내린 비로 인한 강수량은 13일 오전 9시까지 전국적으로 10∼450㎜ 분포로 강수량의 지역별 편차가 크게나타났다.

남해를 비롯한 남해안지방과 대관령을 비롯한 강원 영동지방은 시간당 50∼80mm의 집중호우가 내려 일 강수량도 400mm정도로 많은 강수량을 기록했다. 지역별 강수량은 제주도 60∼270㎜, 전남 70∼300㎜, 경남 100∼450㎜, 전북 30∼130㎜, 충남북 20∼160㎜, 서울.경기 10∼50㎜, 강원지방은 20∼400㎜의 비가 내렸으며 남해가 452.5mm로 가장 많은 강수량을 나타냈다.          [2003.9.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