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다한 삶과 아쉬움

 

  - 석 홍 병원장(전 춘천성심병원장)의 영결식에 참석하고 -

석 홍 병원장(前)의 부음을 듣게된 것은 10월22일 강동성심병원의 개원 기념식이 끝날 무렵 오후 6시경이었다. 생전에 가장 가깝게 지내왔고, 20년전 LA의 한 호텔에서 화재 발생으로 죽음의 고비도 같이 겪었다던 이종주 전병원장(강동 피부과)께 사연을 물었더니 본인도 오늘 아침에야 병원 게시판을 통해서 소식을 접했다고 하셨다. 특히 석 홍 병원장께서는 평소 누구보다도 건강에 자신감을 가졌고, 가족과 떨어져있었던 춘천생활에서 신림복지관으로 근무지를 옮긴 지가 한달도 되지 않았는데 갑작스런 부음소식이라 주위의 많은 지인들을 당황하게 하였다.

한림대의료원에서는 고인의 명복을 기리는 영결식을 강동성심병원 강당에서 거행하였다. 금일 오전 10시에 거행된 영결식에는 한달선 한림대총장, 박형진 의대학장, 이광학 병원장(춘천), 오세문 병원장(강동), 오석준 병원장(한강) 등이 참석하셨다. 또한 병원장 시절 교류했던 노관택 전의료원장, 장우현 전학장, 이종주 전병원장(강동), 박흥원 전병원장(강남), 유재영 전병원장(강동), 박인헌 전병원장(강동), 그리고 평소 친분을 유지했던 임현준 교수(강동 이비인후과), 박양서 교수(강동 산부인과), 정좌구 교수(강남 산부인과), 이수일 교수(강남, 정신과), 이정무 교수(한림 일반외과), 김홍기 교수(춘천 일반외과), 손봉기 교수(춘천 정신과) 등도 참석하셨다. 또한 대학에서는 김용선 교수(환경생명과학연구소장), 김영희 교수(약리학) 등  지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영결식은 서수걸 재단 기획조정실장의 사회로 진행되었는데 추도 묵념에 이어 박철재 교수(외과학교실 주임교수)의 경력소개, 이광학 병원장(춘천)의 추도사, 한달선 한림대 총장의 인사말과 모든 참석자들에 의한 헌화 순으로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석 홍 병원장은 1937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셔서 명문 경기중고를 1956년, 가톨릭의대는 1962년에 졸업하셨다. 군대생활중 국군수도통합병원에서 인턴과정을 거쳤고, 레지던트는 1971년 가톨릭의대부속 성모병원에서 수료했으며, 김희규 교수(가톨릭의대 외과학)의 지도로 1974년에 "혈소판 동종항체로 인한 혈소판 감소증에 관한 연구"란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셨다.

전문의가 되면서 잠시 가톨릭의대 전임강사 생활을 하셨고, 1972년에 서울동산병원(구 동산성심병원)의 외과과장으로 부임하셨다. 1977년 성심유지재단으로 병원이 인수되면서 다시 외과과장으로 임용받았고, 1979년에는 병원장으로 취임하시게 되었다. 또한 1995년에는 춘천성심병원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병원장과 외과학교실 주임교수, 대한병원협회 강원도지회장을 역임하셨다. 유족으로는 여전히 노모(박춘희, 85세)를 모시는 사모님(이종안, 62세)과 석 현(33세), 석 완(31세), 석 진(29세) 등 3명의 아들을 두셨는데 유일하게 의사로서의 부친의 의업을 승계한 장남만이 금년 초에 결혼하였다.

세인들은 석 홍 병원장을 교수, 박사, 선생님 등의 호칭을 사용하지만 한림대의료원에서 15년간 병원장을 역임하셨기 때문에 여전히 병원장(病院長)이란 호칭이 가장 익숙해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1992년 윤덕선 명예이사장의 업무를 보좌하는 의료분석실장을 맡으면서부터 석 홍 병원장을 자주 대면하게 되었는데 성품이 호탈하여 사적으로나 공적으로 항시 가깝게 모실 수 있었던 분이셨다. 특히 동산성심병원의 스탭진 보완이 어려웠고 병원간의 협조문제에 부딛혔을 때 행정처리는 남다른 수완을 발휘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또한 한림대의료원의 실정을 가장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재단과 병원의 발전적인 아이디어를 가장 많이 제공해 주셨다.

병원장님께서 못다한 꿈은 가족과 후학들의 다짐으로 충분히 승계될 것으로 믿는다. 저 세상에서 더욱 평안하게 고이 잠드시길 빌면서 .....

2001년 10월23일

한림의대    조 현 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