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호부락과 관련된 이야기

 

 

 섬호부락 유래

nh04.jpg섬호부락은 입현리 자연 부락의 하나로 강진 바닷가에 있는 마을로 원래의 본 이름은 "적개토굴"이다. 뒷산인 달구산(또는 월구산, 月拘山)에 달이 비치면 물 속에 두꺼비로 보인다고 하여 '두꺼비 섬(蟾)'자에다 '물 호(湖)'자를 부쳐 1900년경 남해군청에 다니던 곽창우(郭昌祐)씨가 마을 이름을 섬호(蟾湖)로 고쳤다고 한다.

혹자는 마을 뒷산이 "달구산"(또는 월구산, 月拘山)이라 달에는 두꺼비가 산다고 '두꺼비 섬(蟾)' 자와 두꺼비는 물을 좋아한다고 하여 '물 호(湖)'자를 써서 섬호로 했다는 주장한다. 따라서 바른 지명이 명분 없이 훼손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사진은 섬호부락의 일부분인데 오른쪽의 앞산을 "작은 달구산", 뒷쪽을 "큰 달구산"이라 부른다.

남해현지(南海縣志)에는 방포리(旁浦里)로 적고 있다. 우리말 바른 이름은 "곁개"이다. "적개"란 "곁개"라 잘못 전해진 이름이다. 북동쪽으로는 강진 바다, 남쪽으로는 큰 달구산(350m)과 작은 달구산이 위치한다. 그리고 토촌에서는 섬호로 넘어가는 고개, 즉 "연지곡"을 거치고, 동쪽으로는 이동면 초양리, 광두리 및 초음리 등으로 이어진다. 최근에는 시멘트로 포장된 도로와 지형적인 변화로 가파른 고개길은 흔적만 짐작할 따름이다.

 

 입현리 부락들

nh04.jpg남해읍에서 이동 방향으로 가다 경계에 접하는 곳에 있는 마을. 마을 생김새가 마치 ‘갓을 벗어 엎어놓은 것 같다’고 하여 생긴 이름인데, 이 고개가 둘이기 때문에 읍쪽 마을을 "작은 갓곡", 이동면쪽 마을을 "큰 갓곡"이라고 불러오고 있다. 남해현지(南海縣志)에는 ‘현 동쪽 5리에 입고개리(笠古介里)가 있다‘고 하여 "갓 곡"이라고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일제 강점기 이후 단행된 1914년의 행정구역 통폐합 때 우리말 이름에 따라 입현(笠峴)이라는 한자 표기로 바뀐 것을 알 수 있다. ‘갓곡’이라는 아름다운 우리말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분도 있다.

섬호 부락은 남해읍 입현리(笠峴里) 네 개 부락중의 하나이다. 이들 중 토촌(兎村) 마을은 뒷쪽에 위치한 달구산에서 달을 보면 달 속에 계수나무와 토끼가 보인다는 전설에 따라 불리어진 이름이며 원래는 '토굴'로 불리었다. 소입현 부락은 1890년경부터 성주 이씨들이 거주하면서부터 마을을 이루게 되었는데, 원래 우리말 이름은 갓처럼 생긴 고개라 하여 '작은 갓곡(小笠峴)'이었다. 한때 봉현(鳳峴)이라 부른 적도 있었다. 대입현(大笠峴) 부락은 조선시대부터 "갓곡"이라 불렀고, 소입현이 분동되면서 '큰 갓곡'으로 구분하여 부르게 되었다.

 

 소섬 (蘇島)

nh522.jpg남해읍 토촌 마을 앞 바다에 있는 폭 100m, 길이 200여m 정도의 작은 섬으로 지금은 시멘트길이 연결되어 육속화 되었다. 벚나무, 대나무, 소나무가 어우러진 작은 숲으로 전망이 좋아 유원지나 낚시터 등으로 구실을 하고 있다. 봄철이면 벚꽃이 만발하여 학생들의 소풍지로 활용되었고, 가을에는 아낙네들의 놀이터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소도(蘇島)"라고 적혀 있으며, "현 동쪽 6리 지점에 있으며 온 섬이 모두 동백이다(再現東六里 滿島皆冬柏)" 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쎄섬" 또는 "’쇠섬"으로 부르고 있는 것은 잘못이며, 그냥 "소섬"이나 "소도"로 불러야 옳다는 주장도 있다.

 

 달구산 설화

nh04.jpg지금의 남해군 남해읍에서 남동쪽으로 큰 길을 따라 약 4Km쯤 가면 왼쪽에 웅장한 산이 버티고 서 있다. 아주 먼 옛날 언제인지 모르나 그 산 밑에 늙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마음씨가 좋지 못하고 매우 욕심쟁이였으며 제 잘못을 뉘우칠 줄 모르는 사람이었고 할머니는 마음씨가 착하며 진실하고 상냥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잠겨진 대문 밖에서 스님 한 사람이 시주를 하기 위하여 염불을 외우며 문을 두드리니 처음엔 주인이 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런 부잣집에서 시주를 안 받곤 갈 수 없다고 또 문을 두드리니 이번에는 시주할 것이 없다고 가라고 하였다. 그래도 스님은 돌아 갈 줄 모르고 염불을 외우며 시주하기를 기다렸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안 되겠는지 소의 똥을 자루에 싸서 스님에게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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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할머니는 스님에게 그렇게 하면 되겠느냐고 마음먹고 몰래 곡식을 가지고 스님이 떠나간 뒤를 달려갔다. 할머니는 스님께 달려가서 "스님 이것을 가지고 가세요." 라고 하면서 우리 영감은 천성이 고약해서 그렇게 하였으니 좋은 마음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러자 스님께서 할머니에게 "며칠 뒤에 당신의 집 마당 한 가운데서 물이 솟아날 것이오. 그러면 당신은 몸을 뒷산으로 피하십시오. 그러나 이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말고 또 산위로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보면 큰 일이 날 것이오." 하면서 어디론가 떠나가 버렸다.


할머니는 닭을 좋아하였고 또 뒷산 기슭에 닭 모양을 한 바위가 있는데 한가할 때면 그곳에서 그것을 어루만지며 즐기곤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스님이 말한대로 마당 한 가운데서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할머니는 당황하여 아무것도 생각할 여지가 없이 뒷산으로 황급히 뛰어갔다. 한참 가다가 그 산의 중간쯤에 자기가 좋아하던 그 닭장 앞에 다다라서 그만 자기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고 말았다. 그러자 할머니는 닭장 앞에서 '악'하는 소리와 함께 바위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그 할머니가 좋아하는 닭장 앞에서 돌이 되었다 하여 닭산(鷄山)이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세인들은 달구산이라 부르게 되어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러나 혹자는 달구산을 닭볏과 같이 생긴 바위가 있어서 지어진 이름이라고도 했으나, 아무튼 달구산은 "닭의 산"이 변형된 표기이다. "닭 산"이란 뜻이다. 그래서 월구산(月拘山)은 "닭의 산"을 한자로 그대로 옮긴 표기에 불과하다.

[2003.10.13. 조현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