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가에 서서

 

 

이 높은 건물 유리창 너머로 펼쳐진 시내 모습은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분주하다. 삼거리 로터리로 질주해 오고 가는 차량의 물결, 북쪽으로 북악산에서 남쪽으로 관악산까지 빽빽이 꽉찬 건물. 그 건물 사이로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이 보인다. 한편 천천히 걷는 사람도 그처럼 여유만 있는 것은 아닐 게다. 천천히 걷는 마음이 도리어 내마음 같이 복잡할 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이 여유없이 오직 한가지 꿈만을 위해 지냈던 한 해였나보다.

꿈이 있는 자에겐 영광이 있다고 그 누가 말했던가. 그러나 그 영광의 길이란 말할 수 없는 눈물과 진한 아픔과 고독의 길이리라. 현실과 꿈 사이에 거리가 너무도 멀어서 그토록 고독을 느끼는 지도 모른다. 불평과 불만, 실망과 회의에 빠지기보다 오히려 사명감과 긍지를 가지고 행복하게 여겨야 할 아직은 젊은이의 한 사람으로 몸부림치 먼 사연들. 이제는 조용한 침묵과 사색 속에 부침되어 간다.

모든 것이 마음같지 못할 때 얼마나 「착한 무능을 스스로 원망하였던고! 내가 모든 것을 고통스럽게 여겼던 것은 자신에 대한 불만 때문이었을까? 내가 나 자신이 된다는 것은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길이며 동시에 남을 사랑할 수 있는 길이리라. 그 누가 자신만큼 자기를 사랑할 수 있으며 또한 학대할 수 있으랴.

인정은 야속하고 세상은 각박하고 그리고 인간관계는 얼마나 무상한가? 똑똑한 사람은 많아도 믿음직한 사람은 드물고 연애하는 사람은 많아도 진실로 사랑하는 사람은 드물고. 높은 사람은 많아도 존경스런 사람은 드물고. 또 옷은 화려해도 마음이 아름다운 여인이 드문 세상이 아닌가.

사람마다 자기가 남일 수가 없기에 자기가 존재할 수가 있는지 모르나 그리하여 남을 믿지 않으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마다 고독과 소외감을 느끼는지도 모른다. 서로가 손잡고 웃고하는 가운데 더 짙은 고독을 느끼는 일은 없었던가? 절망으로 인하여 통곡하고 싶은 때는 없었던가?

폭풍 속의 나뭇잎들처럼 인간은 정말 슬프고 가련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조금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조금은 스스로 합리화도 해가며 살아가는 나의 모습이 어쩜 대견스럽고 휼륭하게도 보인다.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이 우리들의 현실이고 보면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그른 것인지, 무엇이 원칙이고 예의인지, 무엇이 가치있고 가치 없는 것인지 분간하기 힘들어 혼란에 빠지고 만다. 부정. 부정의 들판을 지나며 그 언제 긍정의 들판을 만날 수 있겠지.

이러한 상념들의 연쇄 속에 나는 한참이나 창가에 서 있었다. 아직은 못다한 생을 위해 의연한 모습으로 병실로 향하는 저 환자에게서도 애련한 생의 미련이나 슬픔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한 생명의 마지막 침착과 강인한 의사를 보는 듯하여 가슴이 뭉클해진다. 생의 종말이 끝나는 허무한 것이라 할지라도 밝은 면을 지향하며 아름답게 살아가고 싶다. 남보다 뛰어난 것이 없고 남보다 잘난 것이 없고 남보다 가진 것이 넉넉하지 못하다 할 지라도 노력하여 쓸모 있는 인간이 되어야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에겐 훌륭한 남편과 아버지, 나의 환자들에겐 친절한 의사가 되어야지. 그리고 강자 앞에서 약하고 약자 앞에서 오만한 소시민적 상류시민이 되어서는 안돼. 지금도 무심한 세월의 시간은 흐르고 있는데 …  신에게는 천년이 하루같고 하루가 천년같다고 하지만. 연약한 인간일지언정 십년을 하루같이 하루가 십년같이 참고 일하고 기다리는 믿음과 희망과 용기를 가져야지.

[1980년 12월15일  의사신문 기고]